맑은 밤하늘에 휘영청 둥근 보름달이 뜨면 괜스레 맘이 설레면서 벅차오른다. 그날이 정월대보름이나 한가위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인간이 달을 바라본 역사는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을 텐데, 누가 언제부터 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풍습을 만들어냈을까? 수천 년 전 어느 밤, 메소포타미아의 들판에서 달을 바라보던 농부였을까? 아니면 중국의 시인이었을까? 혹은
잠이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냐고 누군가에게 물은 적 있다. 그때 들었던 말이 강렬했다.“놀아. 그냥. 억지로 눈 붙이지 말고.”그래, 그렇지. 배고플 때 먹으면 되고, 졸릴 때 자면 되고, 써질 때 쓰면 된다.달아나는 걸 좇을 필요가 없다. 어차피 먹고 자고 쓰게 될 것이다.시원하고 담백한 그 대답이 어찌나 마음에 들던지, 잠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생활 면
도서관에 대한 단서들도서관과 지도(atlas)가 서로 닮았다는 걸 알아챈 한 사람이 있다.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에 대한 이야기다. 바르부르크 문화학 도서관은 그의 프로젝트 ‘므네모시네 아틀라스’와 함께 사고의 기계로서의 아카이빙을 이야기한다. 바르부르크 도서관의 책들은 십진분류의 주제별 숫자나 저자명 순으로 배치되지 않았다. 대신 ‘좋은
2002년, 스웨덴 말뫼의 항구에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크레인을 배웅하기 위해서였다. 배에 실려 멀어지는 크레인을 보면서 그들은 눈물을 흘렸다. 우리에게 ‘말뫼의 눈물’로 알려진 바로 그 이야기이다.말뫼에는 오랫동안 초대형 골리앗 크레인이 서 있었다. 150미터 높이의 크레인은 도시 어디에서나 자연스럽게 눈에 띄었다. 일상은 물론이고 한 사람의 생을 이
책으로 하는 가장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놀이, ‘낙서’동네 어린이도서관에서 ‘책 제목 끝말잇기’, ‘책에서 나온 단어 맞히기’ 같은 놀이가 안내되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아쉽게도 우리 집 어린이들은 이런 놀이에 참여한 적은 없지만, 집에서는 책의 다른 쓸모를 일찌감치 발견했다. 책을 가능한 한 높이 쌓아 올리는 놀이였다. 다행히 책을 펼쳐 그림을 따라
장바구니의 고기 팩에 빠진 마지막 정보마트에서 식품을 선택할 때 우리는 가격과 원산지, 중량, 유통기한을 자연스럽게 확인한다. 가공식품이라면 영양성분표를 보고 열량이나 단백질 함량도 살펴본다. 그러나 그 식품이 생산되고 운송되어 매장에 오기까지 남긴 탄소발자국은 쉽게 알 수 없다. 특히 정육 판매대 앞에서 고기 한 팩을 고를 때, 그 선택이 탄소 배출과
노르웨이에 가고 싶다. 빽빽한 침엽수림과 까마득한 해안 절벽 아래 펼쳐진 푸른 피오르(fjord), 어릴 적 달력 사진 속의 이 풍경은 여름마다 기억 속에 되살아나곤 했다.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연극 〈인형의 집〉의 작가 헨리크 입센과 현대인의 불안과 공포를 그린 〈절규〉의 화가 에드바르 뭉크가 있는 나라.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노르웨이엔 지고지순한 사랑
내가 떠나고도 이 책상들은 남아 또 다른 누군가에게 품을 내어주고 그의 너저분함에 익숙해질 것이다. 그리하여 끝까지 남아 있는 것은 책상일 것이다. 우리는 겨우 지나가는 발자국이다. 책상 앞에 앉아 먼저 하는 생각은 나를 책상으로 이끈 이유와 가장 멀리 떨어진 생각뿐이다. 매일 출근하여 자리에 앉아 모니터의 전원을 켜며 나는 요즘 온통 이직 생각에 빠져 있
클래식 작곡가의 팝송 〈All by Myself〉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팝송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의 곡을 들어보지는 못했어도 에릭 카먼의 팝송 〈All by Myself〉는 아마 익숙하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카먼은 클래식을 사랑한 음악가였다. 그는 깊이 심취해 있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2악장의 선율을 팝송 벌스에 사용했고, 해당
1916년 겨울, 사서들의 손에 얇은 소책자가 한 권씩 조용히 건네졌다. ‘독서의 일곱 가지 기쁨’이라는 제목의 16페이지짜리 작고 얇은 책자였다. 펼치면 한 호흡에 읽어 내려갈 수 있을 것 같고, 덮으면 금세 잊힐 것 같은 이 작은 책 안에는 오늘 우리가 ‘사서’라고 떠올리는 얼굴이 담겨 있었다.단정한 옷차림의 차분한 목소리, 그리고 책 곁에서 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