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에세이] 황인숙의 고양이와 함께하는 독서 - 《종이 동물원》, ‘상급 독자를 위한 비교 인지 그림책’
황인숙_시인
2023-05-3000:01
1.
두어 해 전 일이다. 마을버스 정류장 옆 전신주에 고양이 주인을 찾는 게시물이 붙어 있었다. 스코티시폴드(Scottish Fold)를 보호하고 있다며 연락처를 남겨놓았다. 노르스름한 빛깔의 귀 접힌 고양이가 찍힌 흐릿한 사진과 함께. 그 고양이가 곧 제 집을 찾아갔다는 소식을 풍문으로 들었다. 그즈음 우리 집 아래 골목의 고양이 밥 놓는 데 못 보던 고양이 한 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턱밑부터 배까지 하얗고 등짝은 고등어 무늬인데 아주 붙임성이 있었다. 누구냐, 너는? 분위기가 여느 길고양이 같지 않았다.
어느 날, 밥 먹는 고등어태비 머리통을 박박 쓰다듬는 어린애한테 “얘, 주인 있어요. 저기 살아요”라는 말을 들었다. 알고 보니 밥자리를 지나는, 막다른 골목쟁이에 이사 온 집의 고양이인데, 게시물 속의 스코티시폴드 역시 그 집 고양이였다. 그런데 고등어태비랑 스코티시폴드가 엄청 싸워서 고등어태비를 지하실에 내놨다는 것이다. 그럴 수가! 가엾어라·····. 나, 혼종-잡종 성향의 인간은 고등어태비한테 애틋한 마음이 더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그 골목쟁이에 사는 한 아가씨한테 “얘를 밖으로 내돌릴 거면 꼭 중성화시키라고 전해주세요”라고 부탁했다. 며칠 뒤 “중성화는 시켰다고 하네요”라는 답을 듣고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긴가민가했다.
그 사람들, 이러다가 얘 유기하는 거 아니야? 내 흐린 마음은 고등어태비가 밥을 먹고 있을 때 마침 지나가던 한 남자가 발을 멈추고 함빡 웃으며 “푸코! 밥 먹니?” 하는 모습을 보고 맑아졌다. 아주 사람 좋아 보이는 40대 남자로 목소리도 쾌활했다. 저 사람이 주인인 모양이군. ‘푸코’라. 고양이 이름을 ‘푸코’라 짓는 사람이면 믿을 수 있지. 그때 나는 ‘푸코’라는 이름에 쏠려서, 제 고양이가 길바닥 밥을 먹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보는 것, 고양이가 그 남자를 따라가지 않는 것 등이 시사하는 바를 깨닫지 못했다.
ⓒunsplash
그 고양이 이름은 ‘푸코’가 아니라 ‘코코’였다. 내가 잘못 들었던 것이다. 그 골목쟁이에는 코코를 예뻐하는 사람이 많았다. “코코는 자기네 고양이가 아니래요. 이사 오는데 따라온 고양이라네요”라는 영문 모를 말을 전하는 아가씨의 착잡해하는 표정을 보기도 하는 와중에 또 ‘스코티시폴드 잃어버린 분’을 찾는 게시물이 붙었고, 그 고양이가 다시 제 집을 찾아갔다는 풍문을 들었고, 너덧 달 뒤 그 집은 코코를 두고 이사를 가버렸다. 그 골목쟁이 집에 임시로 거주할 무슨 사정이 있었던 듯하다. 그 집에는 스코티시폴드가 한 마리 아니고 두 마리 있었다고 들었다. 아마 암수 한 쌍으로 중성화도 안 시켰을 터인데, 새로 이사 간 동네에서 또 잃어버렸다는 말을 풍문으로 들었다. 고양이를 아무리 좋아해도 키워서는 안 되는 가정이었던 것이다.
아주 이따금씩 밥자리에서 보던 코코를 매일 밤 만난 지 한 달쯤 된다. 겁이 많아져서 다른 사람 발짝 소리가 나면 도망가기 일쑤지만, 여전히 정답고 순한 코코. 쪼그려 앉아 밥을 챙기고 있노라면 내 엉덩이에 뺨을 비벼대며 기다린다. 밥 먹을 때 머리를 쓰담쓰담 하면 골골거린다. 전에는 신참 주제에 다른 고양이들한테 텃세가 심했는데, 저도 고생을 해봐서 참고양이가 됐는지, 아니면 자기도 똑같은 처지라고 생각하는지 무덤덤하니 온화해졌다. 코코와 같은 시간에 오는 고양이는 소위 ‘전기고양이’로, 눈에 시퍼런 불을 켜고 챠아악! 샤아악! 소리를 내며 공격 모드여서 “무서워서 밥을 못 주겠어!” 소리를 지르곤 했는데, 웬일로 요즘은 좀 어색하게 응석 섞인 소리를 내며 밥을 보챈다. 8년여 살고 보니, 사람 고양이 통틀어서 저한테 위험하지 않고 이 되기로 나만 한 생명체가 없다는 걸 알았나 보다.
마주치기만 하면 맹렬한 기세로 번갈아 쫓고 쫓기던 코코랑 전기고양이가 이제 거리를 두고 앉아 묵묵히 제 밥을 먹을 뿐이다. 그 집이 이사 간 처음에 코코는 당황하고 기죽은 기색이 여실했다. 그러더니 열흘에 한 번이나 모습을 보이다가 꽤 오래 안 보여서 잘못됐나보다 생각했었다. 그나마 안전하던 보금자리였던 지하실에서 쫓겨났을 것이다. 어쩌면 그 과정에 어떤 인간한테 혼찌검이 나고 혼비백산해서 골목을 멀리 벗어나 헤매기도 했을 것이다. 포기할 때쯤 나타나 ‘살아 있었구나!’ 대견했는데 어디서 무슨 밥을 먹는지, 그저 나랑 시간이 안 맞는 건지, 또 한참이나 못 봤다. 어쩌면 그 골목쟁이 안쪽에 사는 누군가가 각별히 코코를 돌봐왔는지도 모르겠다. 대문 안쪽 한 구석에 잠자리를 마련해줬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코코가 골목 초입으로 나오지 않고 살다가 조심조심 나오기 시작한 것인지도. 누군지 고맙고 고맙다. 코코, 우리 오래 보자. 전기고양이 너도.
ⓒunsplash
2.
켄 리우의 《종이 동물원》은 황홀한 소설집이다. 초판 1쇄 펴낸 날이 2018년 11월 29일인데, 2022년 10월 12일에 펴낸 18쇄로 이제야 읽는다. 상당한 독자가 있었다는 건데, 나도 진작 읽었으면 좋았겠다. 그랬다면, 4년여 동안 내 글이 보다 탄탄해졌을 것 같다. 와, 뭐 이런 책이 다 있지? 켄 리우, 부럽다.
맨 앞에 실린 표제작 〈종이 동물원〉부터 독자는 압도당한다. 꽉 메는 목으로, 눈시울이 후끈해지면서. 《종이 동물원》에 담긴 14편 소설 전부 감탄을 불러일으키는데, 급기야 〈파자점술사〉를 읽으면서 필립 K. 딕의 장편 《흘러라 내 눈물, 경관은 말했다》에 대해 쓰려고 메모까지 다 해놓았던 계획을 뒤엎었다.
‘“중국에서는 나이 차가 크게 나는 친구 사이를 가리켜 ‘망년지교(忘年之交)’라고 하네. 나이를 잊은 우정이라는 뜻이지. 우리가 만난 것은 운명이야. 아무쪼록 나와 테디를 친구로 여겨주면 좋겠네.”’
- 《종이 동물원》,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황금가지, 153쪽
이 대목을 읽으면서 란아 생각이 났다. 내 고양이 란아. 란아가 세상을 떠나기 전날, 병원에서 나를 배웅하며 바라보던 란아의 눈빛은 언제나 나를 위로한다. 전적인 믿음이 담긴 그 맑고 부드러운 눈빛. 모든 걸 이해하고 모든 걸 용서하고, 내가 처할 가책과 비탄에 가없는 연민과 사랑을 담은 그 눈빛. 란아·····. 란아와 내가 나눈 건 다름 아닌 우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에 란아가 있었다. 보꼬와 명랑이가 내 아이였다면, 란아는 걔들을 나와 함께 돌본 친구였다.
말과 글에 대한 바닥 모를 지식과 상상력이 독자의 지적 미감을 현란할 정도로 자극하는 《종이 동물원》을 읽으면서 중화 민족 작가는 어쩜 이리 하나같이 대단한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는 방대한 중국 고전에 대한 지식이 일반상식으로 탑재돼 있는 듯하다. 예컨대, 대만 판 〈섹스 앤 더 시티〉라고 할 만한 왕원화의 《단백질 소녀》에도 온갖 고사와 성어가 줄줄이 인용된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들이 고사성어를 입에 달고 사는 게 사뭇 재미를 더한다는 효과를 의도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네 엄마를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사랑했단다. 그러면서도 네 엄마가 사랑 때문에 변할 거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엄마는 이렇게 말했어. “사랑의 형태는 여러 가지야. 그리고 내 사랑은 이렇게 생겼어.”’
- 《종이 동물원》,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황금가지, 325쪽
〈상급 독자를 위한 비교 인지 그림책〉의 한 구절이다. 그 구절이 속한 문단의 다음 문단은 이렇게 시작된다. ‘우주는 메아리와 그림자로 가득해. 그건 엔트로피와 맞서 싸우다가 패해서 숨을 거둔 문명들의 잔상과 유언이란다. 우주 방사선 속에서 흐릿해져가는 잔물결들.’
이렇게 상급으로 지적이면서 이렇게나 멜랑콜리해도 되는 거야? 뭐 이런 SF가 다 있담. 하, 이 대단한 작가가 1976년생이라니, 나는 ‘망년지교’나 되뇔 수밖에.
황인숙_시인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8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가 당선되면서 시단에 데뷔했다. 시집으로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슬픔이 나를 깨운다》 《우리는 철새처럼 만났다》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자명한 산책》 《리스본행 야간열차》가 있다. 최근 시집 《내 삶의 예쁜 종아리》를 펴냈다.
현대문학상(2017), 김수영문학상(2004), 동서문학상(1999)을 수상했다.
1. 내가 사는 동네에 아주 작은 공원이 있다. 골목의 서른 개쯤 되는 계단을 올라가 딸랑 그네 네 개가 있을 뿐인 놀이터로 접어들면, 근처 어느 집의 열린 대문 안이나 화단 덤불에서 서성이던 ‘귀(貴)’가 카트 바퀴 구르는 소리를 듣고 울면서 쫓아와 맞아준다. 하소연하는 듯도 하고 따지는 듯도 한 울음소리다. 귀의 정식 이름은 귀부인. 3년 전엔가, 공
1.우리 보꼬는 책을 좋아했다. 내가 방바닥에 엎어놓거나 펼쳐놓은 책들. 마치 끌어안고 있다가 잠결에 놓친 것처럼 앞다리를 책 표지에 나른히 늘어뜨리고, 머리통을 책등에 얹고. 펼쳐진 책에서는 그 위에 제 몸을 최대 면적으로 펼쳐 엎드려 새근새근 잤다. 나는 건성으로 “미안!” 하며 보꼬가 깔고 있는 책을 서슴없이 빼내곤 했다. 다른 책을 읽어도 됐으련만.
삶의 대부분을 서점에서 보낸다. 나는 습관적으로 나의 일터가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지 살피고 있다. 은밀하고도 흥미로운 딴짓을 소개해야 할 텐데…… 왜 자꾸만 지질한 이야기나 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롱폼인 책을 판매하는 사람이, 정작 책을 저 멀리 내팽개친 채 타인의 짧은 평가에 일희일비하는 이야기를 할 참이다. 어쩌다가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