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코앞에 둔 여자 분이 찾아왔다. 마음이 설레고 예식 준비만 해도 바쁠 시기에 무슨 이유로 찾아왔을까.
지방 출신인 그녀는 그곳에서 동급생인 한 남자와 동거를 했다. 그러다가 서울의 꽤 괜찮은 대학으로 편입하면서 거주지도 서울로 옮겼다. 그러나 상대 남자는 편입이나 상경에 대한 의지가 별로 없어 지방에 그냥 머물렀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연히 둘의 동거도 끝이 났다. 문제는 거기서부터였다.
그녀는 서울 생활을 시작하며 자신의 과거를 지우기라도 하듯 이전에 알았던 모든 사람들과 관계를 끊었다고 한다. 완전한 서울시민, 서울 소재 대학교의 대학생이 되고자 하는 그녀 나름의 의지요 열망의 발로로 이전 관계를 정리하는 한편 그녀는 자신의 가치를 높일 각종 스펙 쌓기에도 모든 노력을 다했다. 그러다가 지금의 남자를 만났다. 결혼을 약속한 지금 남자는 한때 지방에서 사귀었던 남자에 비해 학벌이나 집안 배경 모두 우월하다고 했다. 사회적 신분을 높이고자 애써온 그녀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고 할 만했다. 그런 그녀에게 어떤 고민이 있을까, 궁금하던 참이었다.
“교수님! 우리 정말 사랑한 거 맞아요?” 하고 그녀가 물은 것은 그때였다.
“우리라면 결혼할 지금의 남자를 말하는 건가요?”
그런데 뜻밖에도 그녀가 사랑 운운하는 대상은 ‘옛 남자’였다. 어차피 헤어진 사람인데 그녀는 왜 새삼 그 남자와의 사랑에 대해 묻고 있는 걸까?
“그거야 본인이 대답해야 할 말이지요. 어떻게 생각하는데요? 사랑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글쎄요. 저는 사랑이라 해도 그건 지질한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지질한 사랑이라······. 그럼 지질한 사랑의 반대는 뭔데요?”
“글쎄요······. 업그레이드된 사랑?”
내 말에 잠시 생각하고 난 후에 그녀가 한 대답이었다. 그제야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을 알 것 같았다. 그녀가 새삼 옛 남자와의 관계가 무엇이었나 되돌아본 것은 조만간 결혼하게 될 현재 남자와의 관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싶은 심리 때문이었다. 무엇인가 불편하고 괴로워서 나를 찾아왔을 그녀의 진정한 내면의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녀는 사랑에 대해 묻고 있는 게 아니라 자기 안의 무언가를 확인받고 싶은 것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침내 그녀가 눈물을 보였다. 자기를 팔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결국엔 자기를 상품처럼 팔고 있는 것 같아 비참한 기분이라고 했다. 자신이 왠지 초라하고 비굴해 보인다는 것이다. 요즘의 젊은이다운 지극히 현실적인 결혼관을 갖고 있는 그녀의 혼란은 사실 이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신의 감추고 싶은 지질한 환경, 그런 것들이 뒤엉켜 만들어진 들키고 싶지 않은 내면의 열등감 때문에 힘들었던 것이다. 그녀가 필요로 하는 것은 자기 선택에 대한 격려와 지지였다. 설사 세상의 지지가 없더라도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확신은 있어야 했다. 한마디로 조만간 하게 될 결혼에 대해 정당성을 확보하는 게 필요했던 것이다.
“지금 결혼하려는 남자가 왜 좋은지 이유를 찾아보세요. 이러이러해서 좋아한다고 마음속에 그 이유를 자꾸 되새기고, 그래서 나는 이 사람과 결혼하려는 거야 하고 스스로 확신을 키워봐요.”
그녀에게 필요한 건 누구를 더 사랑했는지, 그게 정말 사랑이었는지를 확인하는 게 아니었다. 코앞에 다가온 결혼에 대해 그 결혼의 정당성을 스스로 확신하는 일이었다.
상담자는 내담자를 만날 때 문제의 본질을 찾으려 노력하지만, 그 본질에 대하여 옳고 그름의 판단을 내리지는 않는다. 심리 상담을 한다는 건 아픔을 덜어주면서 스스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지 마땅히 이래야만 한다고 도덕 교과서를 들이미는 일이 아니다.
누가 어떤 일로 괴로워한다면 자신에겐 아무 잘못도 없기에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겪는 대부분의 고통은 자신이 한 잘못에서 시작된다. 그것에 대해 자기 잘못부터 근본적으로 고치라고, 내가 말하는 대로 살아야 한다고 충고한다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상담이 충분히 무르익으면 저절로 그름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게 되겠지만, 그 전에 중요한 점은 상대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일이다. 당신이 가진 욕망 안에서 그런 갈등과 조바심은 당연하다고, 당신 입장에서는 아무튼 힘든 게 당연하다고, 내담자의 욕망이 아니라 그의 아픔을 인정해주는 것이다.
나를 찾아왔던 그녀는 결혼을 할까 말까 주저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내면에 숨겨두었다고 생각했던 감정이 올라와 지금 여기에서 심하게 불편해진 것이었다. 때문에 나의 조언은 말하자면 ‘긍정적인 착각’을 유도하는 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아픔을 말하는 상대에 대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 아픔에 동행해주면서, 다만 상대가 자기 아픔에 치어 미처 보지 못하고 생각지 못한 것을 보여주고 말해주는 것이다. 사랑이든 무엇이든 최종 선택은 어차피 본인의 몫이고, 본인이 하게 돼 있다. 결혼을 앞둔 그녀가 드라마틱하게 ‘이 결혼은 하는 게 아니야’ 하고 자기를 찾아나서기를 권하는 게 옳다고만 할 수는 없다. 시간을 두고 살아가다 보면 그녀가 외면하며 꽁꽁 숨겨두었던 그것을 찾아야 할 때가 올 것이다. 어차피 인생은 길다.
꽤 오랜 시간 후 그녀로부터 연락이 왔다. 서로 안부를 묻다가 그녀는 로런 밀즈가 쓴 《누더기 외투를 입은 아이》를 읽었다고 했다. 아마도 아이 키우며 함께 읽은 책인 듯했다. 그녀는 많은 것들을 느꼈다고 했다.
이 책의 주인공은 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지만 가난한 가정 형편으로 학교에 갈 수가 없는 ‘미나’이다. 학교에 입고 갈 겨울 외투가 없는 주인공에게 마음씨 좋은 ‘누비 엄마들’은 자투리 천을 모아 외투를 만들어준다. 여기저기 기워 만든 옷이지만 사람들의 따듯한 배려가 녹아 있는 외투. 미나는 이제 학교를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외투를 무척이나 소중하게 여기며 등교를 한다. 그러나 외투를 처음 본 친구들은 누더기 옷이라고 놀린다. 미나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추억이 함께 새겨져 있는 천 조각들에 대해 설명해주고, 누비 외투는 아이들에게도 소중한 추억이 된다.
‘사람한테는 사람보다 귀한 게 없는 법이지.’
이 말이 너무도 가슴에 와 닿았다고 했다. 아이를 키우며 남편과 행복하게 사는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람과 나누는 사랑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았으며, 무가치하다고 여겨왔던 유년의 삶들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아이를 키우며 나누는 사랑에서 아빠 엄마가 주었을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초라했다고 해서 절대 지질한 사랑을 한 것이 아니고, 그 이후 겪었던 시간들 또한 그러한 것이었음을 알아가고 있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참 가슴이 뻐근해졌다. 상처 없는 사랑이란 없다. 중요한 것은 사랑의 치명적인 상처를 어떻게 피해 갈 수 있으며, 혹 상처를 입었다 해도 그것을 어떻게 잘 치유해나가느냐가 아닐까.
김영아_그림책심리성장연구소 소장
독서치유상담사이자 치유심리학자. 한국그림책심리학회 학회장으로 활동하며 심리학 기반의 치유 강의와 집필,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우는 법을 잃어버린 당신에게》 《마음을 안아준다는 것》 《내 마음을 읽어주는 그림책》 《그림책으로 아이 마음 읽어주기 엄마 마음 위로하기》 《그만 아프기로 했다》가 있다.
그림책에는 특별한 힘이 있다. 그래서 그림책을 이용해 심리 상담과 치료를 하는 프로그램이 많아지고 있다. 김영아 그림책 심리성장연구소장이 그림책 치유가 필요한, 오늘도 큰 문과 마주선 부모들에게 그림책으로 읽는 위로를 소개한다. 그림책을 읽다 보면 종종 눈물이 난다. 책 속에 등장하는 아이가 안타까울 때도 있고, 엄마의 마음이 나와 같아서 울컥할 때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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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을 처음 보면 웃음이 나온다. 주인공인 거북은 친구를 만나기 위해 바삐 걸어가다가 언덕 위에서 굴러 떨어지는데, 그 바람에 몸이 뒤집히고 만다. 혼자서 몸을 다시 뒤집어보려고 버둥거리는 거북. 마침 지나가던 참새가 “거북아, 뭐 해?” 하고 묻는다. 이어지는 거북의 대답이 걸작이다.“보면 모르니? 수영 연습하고 있잖아.” 뒤집어진 몸으로 팔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