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선 모든 것이 꼭 있어야 할 자리에 있었어요. 멜빈은 그게 마음에 들었어요. 멜빈이 좋아하는 책들도 늘 제자리에 있었어요.
마치 병정들처럼 책꽂이에 줄지어 놓여 있었지요. 그리고 멜빈이 좋아하는 사서 선생님들도 늘 그 자리에 있었어요.”
- 《도서관이 키운 아이》 본문 중에서
집에는 늘 책이 많았다. 안방에는 담처럼 높게 쌓인 책 무더기가 있었고, 커다란 가죽 의자가 놓인 서재 방에는 《김찬삼의 세계여행》에서부터 족보까지 책으로 한쪽 벽이 채워져 있었다. 아홉 살에 남동생이 생긴 나는 자주 책 더미 사이에 숨었다. 글자 읽기가 지루해 거실로 나가면 “언제부터 집에 있었니?”와 같은 말을 들었다. 대답을 할라치면 동생이 울었다. 엄마는 언제나 내 이야기까지 들어줄 여유가 없었다. 두 살 위인 언니와 엄마는 친구처럼 친해 보이지만, 지금도 나는 엄마와 단둘이 있으면 무슨 말을 할까 망설인다.
열두 살부터였던가, 집에 있는 책은 전부 진부하고 지루해 혼자 타박타박 걸어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에 자주 가다 보니 어떻게 된 일인지 독서 모임에 참여하고 있었다. 사서 선생님과 비슷한 연령대의 아이 서넛이 모였는데, 당시에는 감추고 싶어했던 ‘나’의 이야기를 쏙 빼놓고 읽은 책에 대한 얘기만 할 수 있다는 점이 제법 좋았다. 그 무렵 어떤 탈을 쓰고 있어야 친구들과, 또 선생님과 무난하게 지낼 수 있는지 깨우쳤고 누구에게도 거슬리지 않도록 연기하며 지냈다. 꾸며진 모범생의 내면에는 온갖 것, 특히 어른과 부모에 대해 비판하고 싶은 마음이 들끓었는데, 독서 모임에서는 책의 주인공을 내세워 하고 싶은 얘기를 마음껏 할 수 있었다.
《도서관이 키운 아이》 6~7쪽
《도서관이 키운 아이》를 그 시기의 독서 모임에서 이야기했다면 멜빈의 부모는 어떤 사람이기에 꼬맹이 때부터 멜빈이 ‘혼자’ 도서관에 가도록 하는 건지 꼬집었을 것이다. 또 현실에서는 멜빈처럼 채집통을 쏟아 도서관에 애벌레가 꿈틀거리도록 한다면 어른들이 나서서 그 꼬맹이를 쫓아버리는 것은 물론 다시는 도서관에 오지 못하게 할 거라고 비판했을 것 같다(여기에 더해 뾰족한 말투로 “어른이 신문 보면서 기침 하는 건 뭐라고 못 하면서 왜 애들이 뛰면 조용히 하라고 눈살을 찌푸리는 거예요?” 하고 따지고 들었겠지).
당시 독서 모임의 사서 선생님은 내가 어떤 말로 위대한 작품의 주인공, 또는 주변 인물을 깎아내려도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하고 들어주는 좋은 어른이었다. 사서 선생님과 관계를 맺었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도서관이 키운 아이》의 마즈, 베티, 리올라 사서 선생님이 반갑고 사랑스럽게 여겨졌다. 어린 시절 독서 모임을 이끌었던 사서 선생님의 이름은 물론 나이도 기억나지 않지만, 책에 대해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도록 인내심 있게 들어주며 고개를 자주 끄덕이던 인상만은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이처럼 우연한 만남으로 들끓는 마음을 들어주었던 좋은 어른이 없었다면 나는 그때 어디를 헤매고 다녔을까 가끔 생각한다. 아이는 어른이 되기까지 수많은 어른을 만나고, 좋은 어른을 많이 만날수록 아이 역시 좋은 어른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커진다. 《도서관이 키운 아이》의 멜빈에게 “오늘 학교에선 재미있었니?” 하고 물어주는 도서관의 베티 선생님이 없었다면, 멜빈이 궁금해하는 것의 답을 컴퓨터로 같이 찾아주었던 리올라 선생님이 없었다면, 또 철자 알아맞히기 대회를 앞둔 멜빈에게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단어들》이라는 책을 정확히 추천해준 마즈 선생님이 없었다면 멜빈은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상상해볼 수 있다. 우리 주변의 많은 10대가 그렇듯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해 알고 싶었던 호기심은 어느새 사라지고, 좋아하는 책이 가지런히 꽂혀 있는 도서관은 시시하고 답답해 발길을 끊었을 것이다.
“여러분이 어린이들에게 작은 친절을 베푼다면 그 어린이들도 자라서 다른 어린이들을 그렇게 도와줄 거예요.”
- 《도서관이 키운 아이》를 쓴 칼라 모리스의 말 중에서
《도서관이 키운 아이》 26-27쪽
《도서관이 키운 아이》에서 머리가 하얗게 센 마즈, 베티, 리올라 선생님과 사서 선생님들보다도 키가 훌쩍 큰 멜빈이 고등학교 졸업식 사진을 함께 찍는 모습이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건 멜빈이 사서 선생님들을 만나지 못했을 경우에 대한 상상이 우리의 현실과 더 가깝기 때문일까? 그 시절을 지나 어른이 된 이제는 한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기까지 지속적으로 응원과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어른을 만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멜빈의 이야기가 기적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부모조차 아이의 곁을 떠났을 때, 아이가 좋은 어른을 단 한 사람이라도 만난다면 아이는 사람을 붙잡을 수 있다. 사람을 붙잡는다는 건 삶을 붙잡겠다는 말과 같다. 기적은 드물지만, 좋은 어른이 되고자 하는 누군가의 노력이 관계와 관심이 필요한 아이에게 어떻게든 우연히 가 닿는다고 믿고 싶다.
아이는 커가며 어른을 미워할 테지만 좋은 어른을 만나고, 또 만나면 조금 덜 외롭지 않을까? 어른이 되어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았을 때 아이라는 이유로 배제하고 나쁘게 굴었던 어른을 떠올리기보다 힘이 되어주었던 어른을 떠올릴 수 있다면 절망보다는 희망의 편에 설 수 있을 것 같다.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안녕!” 인사하고, 오늘 하루가 재미있었냐고 묻고, 또 궁금한 걸 함께 알아보자는 말이 귀한 이유다.
[스토리] 코너에서는 도서관을 배경으로 하거나 사서가 등장하는 소설 등 도서관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도서관 열람실에는 수많은 사람이 오간다. 근처에 있는 도서관의 존재를 모르고 일상을 살다가도 대학 입시 논술이나 취직, 이직을 준비할 때 등 인생의 변곡점에서는 인터넷 검색만으로는 찾을 수 없는 보다 든든한 자료를 얻기 위해 도서관에 가
[스토리] 코너에서는 도서관을 배경으로 하거나 사서가 등장하는 소설 등 도서관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10여 년 전, 버지니아에 계신 이모를 뵈러 갔다가 반나절 정도 워싱턴 D. C.의 중심부를 구경하러 간 적이 있다. 본격적인 관광이라고 하기엔 뭣하고, 그 동네에 처음 간 사람이지만 마치 현지인이 그냥 산책 나온 듯 유유자적 돌아다녔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를 이야기하는 방식솔직하게 얘기하자면,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영화를 모두 다 보았고, 볼 때마다 좋은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이라고 판단했지만, 반복해서 그의 영화를 보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5년 작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의 경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