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봄. 마흔이 되어 맞이한 첫봄에 춘천에 도착했다. 연고도 없는 이 소도시에 발 닿은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공유서재 짓기였다. 인적이 드문 구도심의 60년 묵은 폐가를 사들인 다음 몇 달을 들여 정성껏 고쳤다. 그리고 방 한 칸은 아내의 책들로, 다른 한 칸은 나의 책들로 채워 넣었다. 다른 빈틈은 우리가 그간 살아오며 사랑했던 그림과 조각과 소품과 노래들로 채웠다. 두 평 남짓한 다락방에는 언제든 들어가 쉴 수 있도록 1인용 침대와 키 낮은 고목 책상을 들여놓았다. 주인 없는 집에서 긴 세월을 버틴 앞마당 라일락 나무 주변으로는 누워서 책 읽기 알맞은 벤치를 짜두었다.
재래식 화장실은 옛집의 문으로 만든 책상과 원목 스피커, 그리고 책 몇 권을 놓아두어 독립된 서재로 꾸몄다. 이렇게 심혈을 기울여 가꾼 공간의 문을 우리는 모두를 위해 열어두기로 했다. 나와 너의 경계를 허문 공유서재이고 싶었다. 이름은 ‘첫서재’라고 지었다. 말 그대로 모든 게 다 ‘첫’이었다. 춘천살이도, 서재를 차린 것도, 그리고 휴직을 한 것도. 우리처럼 처음이라 서투른 사람들이 뭐라도 쌓아가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투박하고 담백한 세 글자에 담았다.
방송기자 12년 차. 나는 서울에 있는 직장에 스무 달의 긴 휴직계를 내고 춘천에 왔다. 생의 전환이 아니라면 찰나의 환기라도 필요한 시점이었다. 더 솔직해지자면 더 늙기 전에 제 맘껏 살아보고 싶었다. 돈 버는 일에 시간 쏟느라 미처 벌지 못했던 다른 가치들을, 내 안에 잔존하고 있는 생각과 에너지가 더 녹슬기 전에 벌어보고도 싶었다. 어릴 적 꿈을 벌고, 나만의 시간을 벌고, 타인의 온기를 벌고, 이해관계 바깥에서의 인연을 벌고 싶었다. 이제껏 번 돈을 다 쓰고 오기로 작정하고 그렇게 오직 나의 세상뿐인 스무 달의 문을 열었다. ‘왜 하필 서재였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간명했다. 나의 살아옴을 빼닮은 공간에서 실컷 읽고 쓰는 삶을 바라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꿈결을 유영하는 기분으로 이른 봄날 첫서재의 문을 열었다.
첫서재 ⓒ남형석
하루 한두 명 남짓 걸음하던 이 외진 언덕배기 골목 서재에는 시간이 쌓일수록 차츰 사람도 이야기도 쌓여갔다. 서재지기로서 나는 손님맞이하는 시간 외에는 읽고 쓰는 일에 충실했지만, 더러는 사연을 품고 먼 발걸음을 내어준 손님 몇몇에게 손때 묻은 책을 건네주기도 했다. 반대로 손님에게 책을 선물 받은 적도 더러 있었다. 직접 공들여 가꾼 책의 숲에서 누군가와 주고받은 몇 권의 책과, 그 사연에 관해 조심스레 풀어놓을까 한다. 태생부터 시한부 운명이었던 첫서재는 예정대로 스무 달만 운영한 뒤 지난가을 문을 닫았기에, 그 시공간에서 피어난 이야기들만 이렇게 박제된 채로 떠나보낸 것들을 증명하고 있다.
아무래도 이름이 ‘첫’서재인만큼 선물로 준 첫 책 이야기부터 시작해야겠다. 가게 문을 열고 열흘 남짓 지났을까. 한 손님이 멀리 광주에서 찾아왔다. 손님은 편지를 쓰러 왔다고 했다. 첫서재에서는 손편지를 남기고 가는 손님에게는 공간값을 받지 않았다. 돈 대신 이야기를 값으로 친 셈인데, 두 가지 조건이 있었다. 수신인이 분명해야 했고, 그 수신인에게 차마 부칠 수 없는 사연이 있어야 했다. 어디에도 닿지 못하는 마음을 여기 두고 가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그 프로젝트의 첫 손님이 방금 내게 말을 건 것이다. 그는 두 시간가량 머물다 다 쓴 편지를 앞마당 우체통에 넣어두고 이렇게 말하며 떠났다.
“저 내일 또 와도 되죠?”
저녁 무렵 퇴근길. 시냇가를 따라 걸으며 그가 남기고 간 편지를 읽어 내렸다. 편지에는 다른 차원의 세계로 떠나 재회할 수 없게 된 이를 향한 그리움이 은밀하게 담겨 있었다. 사랑인지 우정인지 헷갈리는 설렘이 어느 방향으로든 단단히 굳어가기도 전에 편지의 수신인은 먼 길을 떠났다고 했다. ‘사실 나 괜찮지 않아’라는 마지막 한 마디에 괜히 눈물이 도글도글 고였다. 내일 또 온다고 한 손님에게, 떠난 그이를 대신할 답장을 써주진 못해도 무어라도 쥐어서 돌려보내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밤잠을 설치다가 문득 몇 년 전 읽었던 시집 한 권을 떠올렸다.
《우리는 매일매일》. 진은영 시인의 시집이다. 몇 년 전, 외로움에 관한 짧은 고백의 글을 몇몇 사람만 볼 수 있는 공간에 올린 적이 있다. 그 글을 보고 누군가 내게 그의 시집을 선물해주었다. 시 한 편 한 편을 눈으로 꼭꼭 씹어 읽어 내렸던 밤들이 불현듯 되살아났다. 시집 제목과 동명인 시는 낮에 만난 그 손님에게 전해주기에 어울리지 않았지만, 시의 제목만큼은 가위로 오려내어 손바닥에 쥐여주고 싶었다. 떠난 사람을 어디에라도 묻고 남은 이들은 매일매일을 살아내야 하겠지. 그 수밖에 없으니까. 어설픈 답장 대신 손때 묻은 시집 표지에 새겨진 일곱 글자가 그에게 더 위로가 되어줄 것만 같았다. 물론 정말로 내일 오셔야 드릴 수 있겠지만.
첫서재 창가자리 ⓒ남형석
이튿날. 정서향집에 햇볕이 시나브로 스며드는 오후 무렵, 가게 문이 열렸다. 기다리던 사람이었다. 그는 반가운지 쑥스러운지 모를 미소를 짓고는 서재 창가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전날보다 더 오래, 지는 석양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같은 자리에 머물다가 일어났다. 문을 열고 나가려는 그를 잠시 불러 세우고는 미리 준비한 헌 시집을 건넸다. ‘먼 길 돌아가는 발걸음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기를 바랍니다’라는 손글씨도 책 맨 앞장에 써두었다. 손님의 표정을 읽어낼 깜냥도 여유도 없었지만 내 마음만큼은 명료하게 읽혔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누군가에게 마음 쓰느라 시간을 쏟았던 어젯밤이 낭비로 여겨지지 않았음을.
스무 달이 흘러 첫서재 문을 닫는 마지막 주에도 누군가에게 시집을 건넸다. 받은 사람은 손님으로 온 열아홉 살 탈학교 청소년이었다. 그의 춘천 여행 마지막 날에 서재 라일락나무 앞 벤치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 나눌 기회가 있었다. 시월의 마지막 일요일. 가을 끝을 알리는 세찬 바람 소리와 발밑 낙엽 부서지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우리는 부서지지 않을 꿈을 조심스레 주고받고 있었다.
그는 ‘출퇴근 시간 만원 지하철에서 앉아 있던 자리를 누군가에게 비켜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 꿈 안에는 많은 조건이 숨어 있었다. 체력도 길러야 하고, ‘출퇴근’길에 기꺼이 그런 행동을 하려면 일이 주는 스트레스도 적어야 할 것이었다. 또 그만큼 마음이 넓은 사람이어야 하겠지. 꿈에 관한 대답은 늘 직업 혹은 직장으로 귀결되었는데, 정규교육을 스스로 거부하고 자기만의 시간표를 짜서 배우고 생활하던 그의 대답은 사뭇 달랐다. 그런 그 앞에 나는 속절없이 작아졌다. 아마 누군가 우리 대화를 귀로만 엿들은 뒤 각자의 나이를 맞혀보라고 했다면 분명히 반대로 말했을 것이다.
밤의 서가 ⓒ남형석
대화가 끝날 무렵 나는 서재로 들어가 시집 한 권을 들고 나왔다. 노르웨이 농부이자 시인 울라브 하우게의 시집 《어린 나무의 눈을 털어주다》였다. 하우게는 ‘울빅’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여든여섯 살 나이로 숨질 때까지 그곳에서만 살았다. 평생 과수원 농부로 일하며 거의 독학으로 배운 언어들로 시를 썼다. 시집과 같은 제목의 시에서 그는 눈 내리는 날 어린나무를 감싸 안고 대신 눈을 맞아주고 싶어한다. 막대기로 두드리거나 가지 끝을 당겨서 눈을 털어주면서, 시린 눈을 끝없이 벗겨내고 또 맞이하는 어린 나뭇가지에 대해 생각한다. 내 앞에 앉아 있던 열아홉 살 손님의 꿈을 듣고 있자니, 나이만 먹었지 미숙한 나로서는 무언가 되받을 말도 경험도 찾지 못해 어쩔 줄 모르다가 이 시집을 건네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하게 정직한 대답이었을 것이다.
“당신이 이 시집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해요.”
마지막으로 건넨 말은 진심이었다. 언젠가 그가 다시 나를 찾아와 시를 읽은 소감을 들려줄 날이 왔으면.
시를 즐겨 찾는 편은 아니지만 가게 문을 여닫으며 선물한 첫 책과 마지막 책은 공교롭게도 모두 시집이었다. 그만큼 시란 사람의 복잡한 마음을 가장 담백하게 응축한 문학이라는 증거가 아닐까. 처음과 마지막 선물 사이에도 시인을 꿈꾸는 어느 고등학생에게는 《기형도 전집》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며 슬퍼한 40대 손님에게는 심보선 시인의 《슬픔이 없는 십오 초》를 건네기도 했다. 마음을 어떻게든 전달하고 싶지만 차마 말로 변환하지 못하는 순간에 시는 그렇게 고마운 대리인이 되어주었다. 은유가 우스워진 세상에서 여전히 누군가는 시집을 찾는 이유이자, 시가 사라지지 말아야 할 최후의 까닭일지도 모르겠다.
※ 이 글은 필자의 저서 《돈이 아닌 것들을 버는 가게》를 일부 인용했으며, 사연에 나온 지명 등 일부 사실은 특정되지 않도록 각색했습니다.
남형석_기자
신문기자로 시작해 방송기자를 거쳐 뉴스기획 PD로 30대를 마쳤다. 마흔 살부터는 회사에 긴 휴직계를 낸 뒤 아무 연고도 없는 춘천으로 떠나 시한부 공유서재 ‘첫서재’를 차렸다. 지금은 다시 서울로 돌아와 기자로 일하고 있다. 산문집 《고작 이 정도의 어른》 《돈이 아닌 것들을 버는 가게》를 썼다.
직장에 스무 달의 긴 휴직계를 낸 뒤, 연고도 없는 춘천으로 떠나와서 차린 시한부 공유서재 ‘첫서재’(1편 바로가기The Liverary)를 차린 목적은 오직 ‘돈이 아닌 것들 벌기’였다. 10년 넘게 직장생활하면서 지겹도록 돈만 좇고 살아왔으니, 잠시라도 생의 우선순위에서 돈을 배제한 채 살아보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첫서재에서 돈이 아닌 가치들이
첫서재는 시한부 공유서재다. 직장을 휴직하고 차린 공간이었기에 문을 처음 여는 순간부터 문 닫는 날이 정해져 있었다. 주어진 스무 달 동안 책의 숲에 둘러싸여 살아볼 요량으로 만든 서재의 문을, 우리는 모두에게 열어두기로 했다. 이 작은 도시의 외진 언덕마을 가게까지 애써 찾아주는 소수의 사람과 오직 책으로만 얽히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다면 읽고 쓰는 삶
버려진 사진들2007년, 지역사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존 말루프(John Maloof)는 한 경매장에서 무명작가의 사진과 필름이 담긴 상자를 낙찰받는다. 진행하던 프로젝트에 쓸 자료를 찾기 위해서였다. 원하는 사진들을 찾지 못한 말루프는 호기심에 함께 있던 필름들을 현상해보는데 거리의 풍경, 사람들의 솔직한 표정과 몸짓이 선명하게 담겨 있는 사진에 매료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