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이 :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비키 마이런· 브렛 워터 지음, 배유정 옮김, 갤리온, 2009)
“다음 인물들의 공통점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데이비드 흄, 마르셀 프루스트, 비벌리 클리어리, 로라 부시, 노자, 카사노바. 정답은······ 이들은 사서였다. 정확히 말하면, 한때 사서였던 유명인이다. 처음 듣는 소리인 게 당연하다. 인간 사서는 명성을 떨치기가 어렵다. 부를 얻기도 힘들다. 도서관이 생긴 이래 사서여서 유명해진 인간은 없을 것이다. 반면 고양이 사서는 운이 좋으면 세계적인 스타가 된다. 듀이가 대표적인 예다. (······) 위암 합병증으로 투병하던 듀이가 2006년 19살의 나이로 안락사했을 때 AP 통신이 소식을 타전하고 270여 개 매체가 부고를 실었을 정도로 듀이는 도서관 고양이 계의 스타였다.”
- 도서관여행자, 《도서관은 살아 있다》, 마티, 2022, 138쪽.
2021년 5월 21일 자 뉴욕타임스에 한 사서의 부고가 실렸다. 96세에 세상을 떠난 루스 S. 프라이태그를 추모하는 기사였다. 천문학 주제 전문사서였던 루스는 미국의회도서관에서 반세기를 보내는 동안 SF 거장 아이작 아시모프와 천문학자 칼 세이건을 포함 많은 이용자들의 연구를 도왔다. 과학자들은 책의 서문에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 3부작’의 마지막 책 《혜성》의 서문에 이렇게 썼다. ‘이 책을 쓰면서 가장 유쾌했던 경험 중 하나는 미국의회도서관 과학기술부의 최고 과학자인 루스 S. 프라이태그(Ruth S. Freitag) 여사와의 만남이었다. 그녀는 최근 3천 200개가 넘는 인용구가 담긴 핼리 혜성의 일대기를 출간했다. 루스의 방대한 지식과 열정, 많은 혜성 자료들을 제공해주려는 의지는 국립도서관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었다.’¹⁾
도서관과 사서의 가치를 존중하는 과학자와 언론이 있는 나라. 미국은 사서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신뢰도가 비교적 높은 편이다. 2016년 메인주 주립도서관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22개 직업 가운데 사서가 간호사에 이어 두 번째로 신뢰받는 전문가로 집계됐다. 2017년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 조사에서는 미국 성인의 40퍼센트가 도서관 사서들이 제공하는 정보를 가장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의료 기관 종사자, 친구나 가족, 언론, 정부기관 정보, 금융기관 정보, 소셜 미디어가 뒤를 이었다).
미국에서 공공도서관에서 일하던 시절 사서라는 직업에 자부심을 느꼈던 적이 많았다. 누군가를 돕는 일이 주는 보람과 기쁨이 가장 컸다. 나는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이용자들은 늘 고마움을 표현했다. 그들이 건네는 감사 인사는 민원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상쇄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사서는 ‘고된’ 직업이었다. 자부심만으로는 견디기 힘든 노동을 감내할 때도 많았다. 《도서관은 살아 있다》에서 나는 사서라는 직업을 이렇게 설명했다. ‘사서는 물 밑에서 쉴 새 없이 발을 저어야 우아하게 떠 있을 수 있는 백조와 같다. 장서 관리, 질의 응답 서비스, 이용자 교육, 프로그램 기획과 진행, 홍보물 제작, 마케팅, 직무 교육 워크숍 및 회의 참여 등 사서 한 명이 하는 일은 생각 외로 많다. 지식을 다루는 정신노동과 지식을 나르는 육체노동의 무한 반복이다. 벽돌 책을 서가에서 빼고 들고 카트에 싣고 밀고 서가에 다시 꽂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시큰시큰한 손목 통증으로 고생하는 직업병도 생긴다. (······) 어디 그뿐인가. “갑질”하는 진상 이용자들과 악성 민원인들을 응대하며 종종 감정노동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래서 사서들은 “웃픈” 농담으로 말한다. 사서는 사서 고생하는 직업이라고.’²⁾
금서 도서전 ⓒ 도서관여행자
나의 옛 동료이자 우리 동네 도서관 관장인 J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가중된 일의 고충을 토로하며 은퇴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했다(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J는 오늘도 도서관에서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사서 일을 수행하고 있을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 ‘대량 사직’(Great Resignation) 행렬에 동참하는 사서가 늘었다고 한다. 과다 업무로 인한 피로감, 사기 저하, 불충분한 경제적 보상(미국에서 사서가 되려면 석사학위를 소지해야 하지만, 이에 따른 보수가 충분하지 않다) 등의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최근 미국 도서관에서 벌어지고 있는 도서 검열에 맞서 싸우다 정신적 고통을 이기지 못해 퇴사하는 사서들도 있다. 검열 운동에 앞장서서 사서를 감옥에 보내고 도서관을 폐쇄하려는 보수주의 단체들과 저항하는 사서들에게 정신적, 신체적 위협을 가하는 주민들 때문이다. 미국도서관협회는 권리장전 제3조에서 ‘도서관은 정보와 계몽을 제공할 책임을 다하기 위해 검열에 도전해야 한다’라고 주창한다. 책은 섹슈얼리티, 젠더, 인종, 사회계급, 장애 등에 근거한 차별에 맞서는 도구다. 사서는 약자와 소수자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책을 지켜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사서들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면서까지 도서관에서 책을 지키려는 이유다. 미국에서 검열을 가장 많이 당한 작가 중 한 명인 커트 보니것은 ‘나는 도서관 사서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내가 존경하는 것은 그들의 물리적 힘이나 정치적 연줄 또는 막대한 부가 아니라 이른바 위험한 책들을 도서관 서가에서 제거하려는 반민주적 불량배들에게 끈질기게 저항하고, 그런 책들을 열람하는 사람들을 사상경찰에게 신고하는 대신 열람기록을 몰래 파기하는 양심과 용기다’³⁾라고 했다. 사서가 직업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려면 이제는 꿋꿋한 양심과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도서관과 사서를 향한 공동체의 관심과 응원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사서이자 문헌정보학자인 마이클 고먼은 저서 《도서관의 가치와 사서직의 의미》⁴⁾에서 사서들이 커뮤니티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도서관을 돌보고 유지하는 것이 사서의 관리자 정신(stewardship)이라고 강조했다. 사서들이 도서관을 돌보고 유지하는 노력을 기울임에도 불구하고, 사서를 존경하기는커녕 사서란 직업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얼마 전 문해력을 다룬 교육방송 프로그램에서 한 초등학교 교사가 전학 갈 학생에게 ‘교과서는 도서관의 사서 선생님께 반납’이라고 적힌 가정통신문을 전달하자 보호자가 교과서를 ‘사서’(구매해서) 선생님께 반납했다는 일화를 전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어쩌면 보호자가 사서 선생님이란 직업을 모를 수도 있었겠다 싶다. 사서교사란 직업의 존재를 알고 있어도 사서교사의 존재 이유를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어른들은 아이들의 문해력 저하를 걱정할 자격이 없다. 김성우와 엄기호 공저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에는 모든 어른들이 밑줄을 긋고 숙지해야 할 중요한 문장이 있다. ‘리터러시의 지표가 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 학생들이 몇 점을 받았냐, 이것이 되면 안 돼요. 더 중요한 건 (······) 걸어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동네 도서관이 있는가, 도서관에 가면 내가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해줄 사서가 있는가, 나는 사서 선생님과 친해서 말을 나눠볼 수 있는가’⁵⁾이다.
동네 도서관에서 사서와 말을 나눴던 칼 세이건은 사서가 추천해준 책을 통해 우주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의 딸 사샤 세이건은 아버지의 저서 《코스모스》에 담긴 이 도서관 일화를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란 책에서 다시 들려주었다. ‘아버지는 별이란 어떤 것일까 궁금했는데 주변 누구도 만족스러운 답을 주지 않았다. 아버지의 부모님인 레이철과 샘은 가난하고 교육을 받지 못한 분들이었다. 그래서 답을 몰랐다. 하지만 어디에 가면 답을 찾을 수 있을지는 알았다. 할머니는 아버지를 공립도서관에 데려갔다. 나는 어린 아버지를 상상한다. 사서의 책상 위가 안 보일 정도로 조그만 꼬마가 별에 관한 책을 보여달라고 말하는 모습. 사서는 할리우드 스타들에 관한 책을 가져다주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원하는 책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다시 설명하자 사서가 적당한 책을 가져다주었고, 그 순간 평생 아버지를 사로잡은 호기심의 길이 갑자기 눈앞에 펼쳐졌다.’⁶⁾
샌환캐피스트라노 도서관 중고서점 ⓒ 도서관여행자
내가 처음 도서관에 출근했을 때 나를 사서로 채용한 옛 상사 H가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모든 사서는 도서관 활동가여야 한다고. 사서라는 직업을 그만두더라도 도서관 활동가의 삶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고. H는 몇 년 전 실리콘 밸리에 있는 산타클라라 시립도서관의 디렉터 직을 끝으로 은퇴했다. 지금은 지역 공공도서관 중고서점에서 얼마 전 은퇴한 그의 사서 친구 M과 함께 자원봉사를 하며 (사서들이 부러워하는) 이용자의 삶을 만끽하고 있다. 몇 달 전, 생일을 앞둔 H가 지인들에게 선물 대신 그가 봉사하는 도서관에 소액의 기부금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나도 기쁜 마음으로 도서관에 기부를 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도서관은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사서 고생한 사서가 사서 일을 그만두고서도 도서관에서 봉사를 하게 만드는 걸까.
아이들에게 도서관이 어떤 곳인지 설명해준 작가가 있다. 사서 루스 S. 프라이태그가 연구를 도와줬던 SF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다. 1971년 미국 미시간주의 트로이 공공도서관은 개관을 앞두고 사회 각계각층의 저명인사들에게 어린이 이용자들에게 보내는 축하 편지를 써 달라 부탁했다. 답장을 보낸 90명 중 한 명인 아이작 아시모프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도서관 개관을 축하드립니다. 이곳은 단순한 도서관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우주의 가장 먼 곳까지 데려다 줄 우주선입니다. 여러분을 과거와 미래로 안내해줄 타임머신입니다. 그 어떤 사람들보다 많이 아는 선생님이며 여러분을 재미있고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친구입니다. 무엇보다도, 보다 나은 행복하고 유익한 인생으로의 관문입니다.’
수전 올리언은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에서 누구보다도 도서관을 사랑했던 어머니의 말을 전했다. ‘우리를 기다리는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가득한 이 마법의 장소에 다시 함께 온다면, 어머니는 세상의 어떤 직업이라도 선택할 수 있다면 사서가 되겠노라고 한 번 더 말씀하셨을 거다.’⁷⁾ 나는 《도서관은 살아 있다》에서 이런 말을 했다. ‘도서관은 공동체가 함께 촘촘한 그물망을 짜는 곳이다. 사서는 공동체를 엮는 직업이다. 사서는 모든 공동체 구성원과 함께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사서는 “사서” 해야 할 직업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다음 생엔 백조 같은 도서관 사서가 아닌 한량 같은 도서관 고양이로 태어나고 싶다’⁸⁾고······. 하지만 또 다른 우주에서 도서관 고양이로 살아갈 수 없다면, 다시 인간으로 살아가야 한다면, 그리고 세상의 어떤 직업이라도 선택할 수 있다면, 한 번 더 사서가 되겠노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신 있게 말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왠지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가득한 마법의 장소에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지구에 있는 사람들을 우주의 가장 먼 곳까지 데려다 주는 그곳에서 쉴 새 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을 것 같다.
작가. 도서관에서 삶을 읽고 삶에서 도서관을 읽는 여행자. 도서관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고 믿는 도서관 활동가. 카드목록함이 있던 아날로그 시대 도서관을 경험한 운 좋은 세대다. 숙명여자대학교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라큐스대 정보대학원에서 문헌정보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에서는 여러 기업에서 IT 개발자로 일했고,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 도서관 사서로 근무했다. 현재는 사서가 부러워하는 도서관 이용자다. 친환경 북 아티스트를 목표로 인생 삼모작을 준비 중이다. 트위터 @kpark_librarian 인스타그램@library_traveller
‘캘리포니아의 공공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는 동안 나는 다양한 이용자들의 삶을 읽었다. 영아, 유아, 어린이, 청소년, 성인, 노인, 이민자, 장애인, 노숙인, 마약중독자, 정신질환자······. 그러면서 공동체 구성원을 향한 이해와 공감을 키워나갔다. 책으로 배웠던 것을 넘어선 소중한 경험이었다. 도서관은 책만 읽는 곳이 아니라 나와 다른 타인을 읽는 곳
‘구글 창을 열 수 없던 시절, 사람들은 도서관 문을 열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사서에게 찾아가 말 그대로 “뭐든지” 물어봤다. 쓸데없다거나 얼토당토않은 질문이라며 혼내는 사서는 없으니까 말이다. 이용자의 질문과 요청에 응답하는 업무를 미국 도서관에서는 참고 서비스(reference service)라 한다. 1883년 보스턴 공공도서관에서 시작되어 보편화
대화문화아카데미의 《새헌법안》이 가진 의미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제11차 최종변론기일을 지나고 있던 지난 2월 25일 《대화문화아카데미 2025 새헌법안-대권에서 분권으로》(재단법인 여해와 함께)가 출간, 발표되었다. 대한민국 헌정사에 또 한 번 얼룩이 새겨지는 동안, 그 헌정사에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보려는 노력이 대조를 이루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