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제11차 최종변론기일을 지나고 있던 지난 2월 25일 《대화문화아카데미 2025 새헌법안-대권에서 분권으로》(재단법인 여해와 함께)가 출간, 발표되었다. 대한민국 헌정사에 또 한 번 얼룩이 새겨지는 동안, 그 헌정사에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보려는 노력이 대조를 이루듯 함께 진행되었던 셈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국회와 대통령, 학계와 여야 정치권은 물론 한국사회의 곳곳에서 진행되어온 현행 헌법의 개정 논의 중에서도 이 《새헌법안》이 가지는 의미는 남다르다. 나는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생각한다.
첫째는 그 지속성 또는 역사성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 대화문화아카데미의 전신인 크리스챤아카데미는 1980년 ‘서울의 봄’에도 군사정부에서 민주화로 이행하는 데 일조하고자 ‘바람직한 헌법 개정의 내용’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그때로부터 출발한 대화문화아카데미의 헌법 개정 제안은 제헌 60주년을 계기로 2006년부터 다시 시작되었고, 그 결실은 《새로운 헌법 필요한가》(2008), 《새로운 헌법 무엇을 담아야 하나》(2011), 《대화문화아카데미 2016 새헌법안》(2016)으로 이어졌다. 그러니까 2025년에 나온 이번 《새헌법안》은 45년 넘게 이어온 헌법 개정 논의의 결실이다. 책 내용을 얼핏 살피더라도, 시대마다 다양한 전공, 다양한 배경,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인물들이 논의에 참여해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중에는 이미 세상을 떠나신 어르신들도 상당수 계신다.
둘째는 대화의 성격과 지향 때문이다. 크리스챤아카데미 시절부터 이 모임의 리더들은 줄곧 ‘대화’(對話, dialogue) 정신을 강조했고, 그 대화를 통한 민주주의를 하나의 사회운동으로 추구했다. 이때의 대화는 사람의 정치에서 근본적인 평등과 자유인으로서의 상호 존중을 전제하는 것이고, 폭력의 제도적 배제는 물론 말의 소통을 통한 세계관의 중첩과 변화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너무도 당연한 이론일 수 있으나, 문제는 그 대화는 항상 (이론이 아니라) 실천에 의해서만 비로소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볼 때, 《새헌법안》의 진정한 가치는 그것을 낳은 대화, 그 대화에 참여해온 수백 명의 사람들을 대변한다는 사실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 눈에는 이번 작업을 마무리한 여섯 분의 위원들(박은정, 박찬욱, 박명림, 장영수, 조진만, 하승수)과 45년 넘게 ‘대화운동’을 통해 헌법개정안 논의에 참여해온 훨씬 더 많은 지식인들의 모습이 자꾸만 어른거린다.
《새헌법안》에 담은 헌법 개정의 기본 방향, ‘대권에서 분권으로’
《새헌법안》은 헌법 전문에 4월 혁명과 6월 항쟁의 명칭을 추가하고, 사형 금지,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배제, 기후생태위기 대처와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 양심적 병역 거부 조항 등을 두어 기본권의 목록을 보완했으며, 현행 헌법의 독소 조항들을 삭제했다. 권력 구조에 관해 헌법 편장(篇章)의 제목을 기관 중심에서 기능 중심으로 바꾼 것도 앞으로의 헌법 개정 논의에서 중요하게 기억할 만한 대목이다. 하지만 조야의 관심은 그보다는 헌법상 권력 기구들의 구성과 운영 방식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모아지고 있는 듯하다. 《새헌법안》은 2025년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헌법 개정의 기본 방향을 ‘대권에서 분권으로’라고 요약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눈에도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다음 세 가지다.
우선, 국회의 구성에서 양원제를 도입해 100명의 공화원(상원)과 300명의 민주원(하원)을 둔 점이다. 참의원이나 민의원과 같은 헌정사의 전례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조 제1항의 표현을 따서 각 원의 이름을 붙인 점은 특기할 만하다. 이 제안에 따르면, 공화원은 광역·권역 단위 비례대표제로 선출하는 임기 6년의 의원으로 구성하되, 의원은 매 2년마다 3분의 1씩 개선한다. 민주원은 임기 4년의 의원 300명으로 구성하되, 의원의 임기는 3선으로 연임을 제한했다. 민주원은 재적 과반수의 찬성으로 2인의 국무총리 후보를 추천하고, 국무위원 임명동의권을 행사하며, 헌법재판관·대법관·중앙선관위원·감사위원을 재적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선출한다.
다음은 대통령의 권한을 상당 부분 축소한 점이다. 현행 헌법의 5년 단임제를 유지하면서도 결선투표제를 도입해 정치 세력 간 연대를 촉진하는 동시에 민주적 대표성의 강화를 꾀했으며, 앞서 말한 국무총리 후보 2인 추천권을 민주원에 부여하는 동시에 그 가운데 1인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함으로써 이른바 분권형 대통령제의 토대를 만들었다. 헌법기관의 구성에 관해서도 현행 헌법에서 대통령이 행사하는 권한의 상당 부분을 국회의 선출로 바꾸었고, 대통령 소속이던 감사원도 헌법상 독립기구로 바꾸었다.
다른 하나는 지방자치를 대폭 강화해 중앙 권력에 대한 견제와 권력 균형을 기한 점이다. 상징적으로 헌법 제1조 제3항에 ‘대한민국은 지방분권국가이다’라는 조항을 추가했고, 지방자치단체 대신 ‘지방정부’라는 명칭을 채택했으며, 자치입법권의 확대, 재정자율권과 자주과세권의 보장도 규정했다. 2018년 3월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했던 헌법개정안의 성안 과정에서 나는 지방자치·경제·직접민주주의 분야의 분과위원장으로 참여해 사실상 헌법 제정에 가까운 논의를 이끌었다. 《새헌법안》은 그 성과를 대부분 보존하면서, 중앙집권주의의 관성을 버리지 못한 채 남아 있던 한두 개의 문장들을 솎아냈다. 이는 아마도 여섯 분의 위원들 가운데 2018년의 논의에도 참여했던 두 분(박명림, 하승수)의 공헌일 것이다. 어디서도 말하지 못한 안타까움을 덜어주신 두 분께는 개인적으로 깊은 감사를 표하고 싶다.
시대정신을 읽고 헌법 개정을 이루어낼 세 번째 목소리
《새헌법안》을 읽으면서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각 조문의 구체적인 내용을 토의하는 여섯 위원의 대화 과정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여섯 분 중 대다수와 어느 정도 교분이 있고 대화모임에 여러 차례 참여하기도 한 까닭에, 나는 마치 책 속에서 각각의 목소리가 울려 나오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러면서 다다르게 된 것은 이 목소리가 헌법을 이루는, 특히 헌법 개정을 이루는 세 종류의 각기 다른 목소리 중 단지 하나일 뿐이라는 깨달음이었다.
첫 번째 목소리가 《새헌법안》에서 들려오는 지식인들의 대화 목소리라면, 두 번째 목소리는 계층과 지역, 이익과 세계관에 따라 나누어질 대로 나누어진 보통사람들, 즉 때때로 단기적인 목표에 매몰되기도 하고 속물근성에 따르기도 하는 일반 시민들의 목소리다. 이 두 번째 목소리는 대화라기보다는 주장이나 구호일 때가 많고, 심지어 서로에 대한 적대와 혐오를 담기까지 한다. 그래서 이 목소리에는 첫 번째 목소리가 끼어들 여지가 크지 않고, 심지어 그것을 무시하거나 압도해버릴 개연성마저 존재한다.
그렇다면 세 번째 목소리가 무엇일지는 명백하다고 생각한다. 헌법을 이루려면, 특히 헌법 개정을 이루려면, 첫 번째 목소리와 두 번째 목소리 사이에서 모두가 듣고 확인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목소리가 반드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보통사람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면서도 지식인들의 대화를 그 안에 녹여낼 수 있는 탁월한 정치 지도자들의 목소리가 바로 그 세 번째 목소리다.
《새헌법안》의 출판기념회가 있던 날, 원로 정치학자 최장집 선생은 “김영삼·김대중·김종필 3김 때가 그리울 정도입니다”라고 말하면서, 3김 정치 이후 87년 체제가 퇴행을 거듭해 오늘날에는 파국적 상황에 놓였다고 진단했다. 여러 측면에서 곱씹을 만한 이 고언(苦言)을 나는 시대정신을 읽고 헌법 개정을 이루어낼 세 번째 목소리에 대한 요청으로 이해한다. 거의 40년 전 3김이 첫 번째와 두 번째 목소리 사이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로 1987년 헌법을 타협해냈듯이, 지금 대한민국에도 바로 그 일을 다시 해낼 정치지도자들의 역할이 시급하고도 절박하게 요청되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 선출된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해 여야의 주요 정치인들은 이 맥락에서 광화문 광장의 함성과 함께 《새헌법안》의 목소리를 듣고 읽어야 할 것이다.
이국운_한동대 법학부 교수
한동대학교 법학부 교수. 한국사회에서 자치분권운동과 사법개혁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온 대표적인 헌법학자이다. 사법시험 등 각종 국가고시의 시험위원을 역임했고, 2015년 한국헌법학회가 수행한 ‘지방분권형 헌법개정안 연구’에서 연구책임자로 참여했다. 주요 저서로 《헌법》 《법률가의 탄생-사법 불신의 기원을 찾아서》 《헌법의 주어는 무엇인가》 등이 있고, 번역서로 스티븐 브라이어의 《역동적 자유》(공역)와 마이클 왈저의 《출애굽과 혁명》이 있다.
2000년대 초, 생애 처음 한국 밖으로 여행 갔을 때를 아직도 선명히 기억한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몰아치던 뉴욕의 2월. 여행 중이라 겨울옷이 변변치 않았기에 발을 동동 구르며 눈이 쌓인 인도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했고 버스의 앞문이 열렸다. 날이 많이 추워 버스에 얼른 올라타려고 하는 순간 버스 기사님이 잠깐 기다리라는
전 세계적으로 한국과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크다. 미국에서도 한국어를 가르치는 초・중・고 학교 수가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관심이 대학에서 한국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학생과 연구자 수의 증가로 이어지길 기대해 볼 수 있는데, 미국 대학의 한국 관련 수업 주제가 기존의 역사, 언어, 문학뿐만 아니라 대중문화, 종교, 디아스포라 등 다양한 주제로 확대되고 있기
전쟁은 인간을 ‘차별’하지 않는다. 군인과 민간인을 구분하지 않고 살상한다. 2026년 2월 말,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에 공격을 가한 직후 초등학교에 떨어진 폭탄으로 여학생 175명이 몰살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책임을 가리기 위해 유엔이 공식 조사에 나섰다. 전쟁 개시 이후 3주 동안 약 5천 300명의 사망자가 나왔는데 그중 511명이 민간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