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옆]은 각 지역의 여러 도서관을 도서관 안에서가 아니라 도서관 옆으로부터 시작해 여행하듯 탐방하는 코너이다.
통영바다 ⓒ강정아
오고 또 오고, 마음이 맴돌게 하는 통영의 색
그 바다에 점점이 박힌 것은 섬뿐만이 아니다. 크고 작은 배들이 물 위에 긴 꼬리를 그리며 바삐 오가고, 뱃길 아닌 고요한 바다에는 양식장 부표가 떠 있기 마련이다. 통영, 하면 바다를 떠올리지만 그 바다는 두고 보는 데 쓰임이 있지 않다. 통영의 바다는 여느 시골의 논이나 밭처럼 허리 펴면 보이고 길 모서리 돌면 펼쳐지는 삶의 장소다.
바다도 그렇지만 음식도 사람도 통영은 별스럽다. 김밥, 시래깃국, 굴젓, 나물, 잡채, 지짐이······ 세상 모든 음식에 통영식이 따로 있다. 통영 사람들은 서슴없이 말한다. 서로 이어진 바다에서 났더라도 통영 것이 제맛이라고. 국거리 생선은 팔딱팔딱 숨 쉬는 생물이어야 하고 숨죽은 반찬이 나오는 식당에는 안 간다. 고달프지 않은 삶이 없으련만 통영이 살 만한 곳인가 물어보면 열에 일고여덟은 살기 좋은 곳이라고 대답한다. 자긍이 대단하다.
장군 이순신의 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고, 일일이 열거하자면 숨이 찰 만큼 여러 분야의 많은 예술인들이 태어나거나 머무르며 작품을 남겼다. 길바닥이건 버스 정류소건 아무 집 담벼락이건 통영과 인연 맺은 예술인들의 시와 그림이 툭툭 나타난다. 윤이상을 기념하는 통영국제음악당에서는 세계적인 거장의 공연이 동네 경로당 잔치보다 자주 열린다. 누비니, 자개니, 소반이니, 발이니, 공방도 장인도 많다. 박경리 선생이 생전의 인터뷰에서 짚어주었듯 ‘당장 군불솥 아궁이에 넣을 장작도 아름답게 쌓는 것이 통영 사람들이다’.
고유함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통영의 정취에 맛든 여행자들은 또 오고 또 온다. 유명한 관광지나 잊지 못할 절경을 보기 위해서라면 한 번으로 족하겠지만, 특유의 색에 이끌리면 자기도 모르게 그리워지고 자꾸만 맴돌게 된다. 내가 그랬다.
충무교에서 바라본 통영운하 ⓒ강정아
번잡하지 않지만 심심하지 않고, 휘황찬란하지 않지만 예사롭지 않은
나는 태어나 일곱 해 정도 충무시 봉평동에서 살았다. 그 후 줄곧 떠나 살다가 마흔아홉에 다시 돌아와 멈추어 산 지 꽉 찬 4년이다. 그 사이 충무시 봉평동은 통영시 봉수로가 되었다. 나고 자란 곳이라고 해도 갓난아기 시절을 빼면 몇 년 남지 않고 기억이라야 다 모아봤자 몇 가지 없는데 통영은 늘 나의 내부에서 찰랑찰랑 일렁였다. 때때로 가고 싶고 궁금했다. 달이 바다를 당겼다 놓았다 할 때 바다가 그러하듯 그리움이 가득 차올랐다가 꺼지기를 반복했다.
변한 것이 없을까만 오자마자 내가 알던 그 통영이 아닐까봐 졸았던 마음이 당장에 펴졌다. 그리고 무어라 특정할 수 없었던 끌림의 정체를 이제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를 끌어당긴 그 힘은 음식, 사람, 문화, 기후, 지형, 그 모든 것이 버무려진 오묘한 통영색 그 자체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것은 시간이 많이 지났다고 쉽사리 사라질 수 없는 것이다.
다리 건너 통영은 또 다른 통영이다. 통영대교와 충무교와 해저터널로 이어진 섬의 이름은 미륵도다. 이곳에는 고요하고 아늑한 해변 산책로를 아래에 두고 우뚝 솟은 통영국제음악당이 있고, 고만고만한 마을과 각기 다른 빛을 발하는 바다를 품고 굽이굽이 돌아가는 아름다운 산양일주도로가 있고, 봉수골이 있다. 옛 이름 봉수골이 어디까지 이르는 지명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름으로 쓰이는 봉수로는 봉평오거리에서 미륵산 용화사까지 이르는 직선 도로다. 이 길의 저쪽 끝은 미륵산에, 다른 한 쪽 끝은 통영운하 길에 닿아 있다.
봉수로는 번잡하지 않지만 심심하지 않고, 휘황찬란하지 않지만 예사롭지 않다. 통영에 처음 오는 여행객은 동피랑 서피랑에 가고 중앙시장과 케이블카를 찾겠지만, 통영에 꽂힌 여행자들은 봉수로로 스며들어 어슬렁거리는 재미에 빠진다. 봉수로에는 미술관과 서점, 음식점과 술집, 빵집과 카페, 갤러리와 게스트하우스 그리고 나이 많은 보호수와 수십 년 자리를 지킨 찜집들과 노포들이 포진해 있다. 눈길이 가는 남의 집 정원은 또 왜 그렇게 많으며 목욕탕, 주공아파트는 또 왜 그렇게 정겨운지 모른다. 봉수로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것에도 자꾸만 눈길이 간다. 여기에 통영도서관이 있어 봉수로, 여행자 거리는 드디어 완성된다.
봉수골 비석군에서 바라본 통영도서관 전경 ⓒ강정아
통영도서관, 봉수로 벚꽃거리의 들머리 혹은 끄트머리
봉평오거리에서 미륵산 쪽으로 방향을 잡고 너무 우람하지도 왜소하지도 않은 벚나무 길을 따라 자박자박 걸어 올라가다 보면 담벽이 없어 훤히 내려다보이는 통영중학교를 만나게 된다. 아마도 그곳을 지날 때쯤이면 꽃나무 그늘 아래 놓인 긴 의자에 잠시 앉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중학교와 이어진 작은 도서관에 눈길이 갈 것이다. 경상남도교육청 통영도서관이다. 통영에는 통영도서관 말고도 네 개의 시립도서관이 있다. 규모나 시설, 환경으로 따지면 다른 도서관들이 더 훌륭하달 수 있지만 통영도서관을 사랑하는 이유는 봉수로에 있기 때문이다.
이제 막 통영에 끌리기 시작했다면 통영도서관이 제격이다. 아쉬운 여행의 끝자락이라면 더욱 좋다. 해가 잘 드는 어문학자료실에는 지역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들을 위한 특별 서고가, 종합자료실에는 이순신 장군의 자료를 따로 모아놓은 책꽂이가 준비되어 있다. 이순신 장군은 특정 지역에 한정할 수 없는 나라의 영웅이지만, 통영의 입장에서 장군은 변방의 작은 어촌 마을이었을 통영을 특별한 곳으로 키워낸 시조와 같다. 그러니 통영의 이순신이라고 해도 억지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순신 서고는 마치 이순신을 기억하는 것이 통영의 의무고 자부라고 주장하는 듯하다. 엘리베이터실 작은 복도에는 ‘갤러리 미파랑’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여기에 지역 작가의 작품이나 도서관 문화 활동의 결과물들을 전시한다.
간간이 열리는 작은 공연이나 강연 같은 주민 참여 프로그램은 통영 색과 주민들의 욕구를 잘 반영해 질이 높다. 가끔 통영도서관에서 근무하는 분들은 통영과 봉수로를 잘 알고 있고 마음으로 좋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정말 그런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기분 좋은 느낌이니 진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인생은 연극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내 인생 무대의 주연배우답게 당당하게 살고 싶었고 관객으로부터 박수 받고 싶었다. 살다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인생은 연극이 아니고 여행이라는 쪽으로. 내가 꼭 서야 할 무대도 나를 주목하는 관객도 실은 없고, 각자 여기에서 저기로, 동시에 이 시간에서 저 시간으로 옮겨 다니는 여정이 있을 뿐이다. 배우가 아니라 여행자라고 생각하자 오히려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이 좋은 가을이 다 가기 전에 통영의 행성 가운데 하나인 매물도에 갖다 올 생각이다. 지금 나는 통영 여행 중이다.
성남에서 남한산성 남문 방향으로 오르는 산길은 낭만적이다. 봄이면 좌우로 길가에 벚꽃이 만발해 터널을 이룬다. 5월, 눈부신 녹음인가 하면 어느새 단풍이 온 산을 곱게 물들인다. 한겨울 계곡을 타고 불어오는 찬바람은 오히려 상쾌하다. 산성의 오랜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계절은 무심하게 오고 간다. 역사와 문화, 자연과 생태, 건강과 힐링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진보초로 향하다도쿄의 진보초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본 동네일 것이다. 나는 몇 년 전 동료 작가와 미시마 유키오를 취재하기 위해 진보초에 간 적이 있다. 우리는 고서점이 즐비한 골목을 오가며 작가의 흔적을 찾아다녔다. 미시마가 자주 들렀던 고미야마 서점, 일본 문인들이 단골로 드나들던 카페 밀롱가 누에바까지. 반나절을 진보초에 머물며 책
문학관 기행은 문학관이 배경으로 하는 문학인의 삶을 소개하고 문학관이 설립된 마을을 둘러싼 문학적·공동체적 가치를 전달하는 코너이다.문학관 기행 연재를 맡은 신구도서관재단 이창경 이사가 만해기념관 전보삼 관장을 인터뷰한 내용을 12월 호에 싣는다.문학가의 삶과 태도가 현대로 와서 어떻게 새롭게 해석될 수 있는지 발견할 수 있었으면 한다. 연말이 다가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