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진보초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본 동네일 것이다. 나는 몇 년 전 동료 작가와 미시마 유키오를 취재하기 위해 진보초에 간 적이 있다. 우리는 고서점이 즐비한 골목을 오가며 작가의 흔적을 찾아다녔다. 미시마가 자주 들렀던 고미야마 서점, 일본 문인들이 단골로 드나들던 카페 밀롱가 누에바까지. 반나절을 진보초에 머물며 책에 둘러싸인 기분을 만끽했다. 책 내부의 세계가 아직 내게 기입되기 전의 상태. 그 상태를 즐기기엔 진보초가 꽤 적합한 장소처럼 느껴졌다.
요네자와 요시히로 만화도서관이 진보초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의아했다. 일본 서브컬처를 대표하는 동네인 아키하바라나 이케부쿠로가 아닌 왜 진보초일까. 오랜만에 방문한 진보초에서 만난 선배 작가도 고개를 갸웃했다. 선배는 도쿄에서 체류 중이었는데 저녁을 먹으려고 만났다가 시간이 남아 동행했다. 선배, 만화 좋아해요? 그는 어릴 때 만화잡지 《소년점프》를 읽었다고 말했다.
《소년점프》의 슬로건은 우정, 노력, 승리. 만화를 읽은 아이들이 현실 세계로 돌아왔을 때 여러 난관을 이겨낸 만화 속 주인공처럼 살고 싶게 만드는 의식을 목표로 한다고 알려졌다. 나도 《소년점프》를 꽤 오래 읽었는데 내게 그런 생각이 새겨졌는지는 모르겠다. 마침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에 놀이터가 보였고 스무 명 남짓한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여기는 아이들이 살기 좋은 곳 같다고 선배는 말했다.
나는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시골에서 자랐다. 읍내로 가는 버스가 하루에 세 대만 운행할 정도로 작은 산속 마을이었다. 맞벌이였던 부모님은 내가 심심해 보였는지 읍내에 다녀올 때면 노끈으로 단단히 묶은 만화책들을 가져와 거실 한켠에 뒀다. 내용도 모르고 무작정 읽었다. 창밖으로 낮밤이 바뀌고, 계절이 가는 줄도 모르고 읽었다. 그러다 열세 살엔 안경을 맞췄고, 잠이 들면 만화 속 이야기가 꿈으로 미끄러지는 것 같았다. 도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 친구가 없어 만화방에서 밤을 새웠고, 스무 살이 되자마자 만화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후 소설가가 되는 과정에서 만화가 모종의 영향을 끼쳤을 거라고 오랜 시간 생각했다.
만화도서관이 진보초에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만화평론가인 요네자와 요시히로가 폐암으로 사망한 뒤 아내 요네자와 에이코가 그의 모교인 메이지대학교에 방대한 장서를 기증했기 때문이다. 메이지대학교가 바로 진보초에 위치해 있다.
일본의 전설적인 만화평론가이자 세계 최대 동인지 코믹마켓의 창립 멤버인 요네자와는 평생 동안 14만 권에 달하는 자료를 모았다. 유족의 기증으로 2009년에 설립되었다가 현대만화도서관과 통합되면서 현재 일본 최대의 아카이브를 자랑한다. 건물은 총 7층으로 1층은 무료 기획전시실, 2층은 유료 열람실, 나머지 층은 수십만 권의 잡지와 동인지를 보관하고 있다. 나는 건물에 들어서기 전 도로 반대편으로 건너가 외관을 촬영했다. 선배는 간판과 쇼윈도 너머를 번갈아 보며 짐짓 관심을 보였다. 혹시 시간을 뺏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내심 마음이 놓였다.
1층으로 들어서자 요네자와의 서재를 테마로 한 전시가 진행 중이었다. 친필 메모, 도서 카드, 수집 초기 단계의 희귀 장서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사실 만화가는 알지만 만화평론가에게 관심을 둔 적은 없었기에 전시가 낯설게 느껴졌다. 다만 불편하고 어려운 게 아닌 기분 좋은 생경함이었다. 나는 번역기를 켜서 신문 기사와 설명문을 꼼꼼하게 읽었다. 한쪽 모서리가 갈색으로 변색된 종이와 손때 묻은 표지를 보며 그가 만화를 마주했던 시간을 상상했다. 그에게 만화는 무엇이었을까, 무엇이었기에 이토록 치밀하고 숭고한 시간을 그러모았을까. 그것은 경이로움을 넘어서는 다른 무언가였고 나의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전시실 직원은 2층 열람실에 가면 직접 만화책을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선배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만화와 관련된 포스터가 벽면에 붙어 있었다. 보이는 게 다 만화뿐이네요. 내가 실없는 소리를 하자 선배는 어깨를 툭 쳤다.
열람실은 메이지대학의 학생 및 교원, 도서관 유료 회원만 입장이 가능하다. 그 외에도 성인을 증명하는 신분증을 보여주면 누구라도 회원 등록을 할 수 있다. 1일 회원가입도 가능하며 신청 용지를 작성한 후 300엔을 내면 된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이용객들이 조용히 만화책을 보고 있었다. 선배는 밖에 있을 테니 편히 둘러보라고 말했다. 나는 주머니에 있는 동전을 만지작거리다가 그날은 열람실에 들어가지 않았다. 운영시간도 얼마 안 남았거니와 누군가를 밖에 세워둔 채 혼자 만화책을 읽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선배와 해가 질 무렵까지 자전거를 탔고 그가 자주 가는 식당에 들러 술을 마셨다. 주인 할아버지가 꼭 예전에 읽은 만화의 주인공을 닮았는데 어떤 만화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다음 날 영업시간에 맞춰 요네자와 요시히로 만화도서관을 다시 방문했다. 꽤 일찍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서너 명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는 용지에 인적 사항을 적은 뒤 돈을 내고 열람실에 들어섰다. 열람실에 있는 자료들은 극히 일부라고 했지만 책장에 빽빽하게 꽂힌 잡지들을 보니 그 시대의 어떤 열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처음 보는 잡지들이 많아 의자에 앉지 못하고 서서 읽었다. 일본어를 잘 하지 못해 그저 그림만 읽는 정도였는데도 재미가 있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단행본이 있는 책장에는 시리즈의 첫권인 1권만 구비되어 있었다. 《고스트 바둑왕》을 꺼내 읽었다. 만화 속 내용보다 그 만화를 처음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바둑을 배우기 위해 책을 사고 인터넷으로 사람들과 바둑을 뒀던 잊고 지낸 일들이 생각났다.
춥고 긴 겨울을 보냈다. 3월 초순, 한발 먼저 봄을 맞고 싶었다. 순수한 동심으로 마음을 다독여준 이주홍 선생을 만나고 싶었다. 부산에 도착했을 때, 기다리던 꽃은 아직 꽃망울을 터트리지 않았지만 투명한 햇살과 맑은 바닷바람이 먼저 맞아준다. 아쉬운 마음으로 동래에 있는 이주홍문학관으로 향했다. 명륜역을 나와 부산전자공업고등학교 방향으로 가다 보면 향파
프랑스 파리 동쪽 교외에 위치한 몽트뢰이(Montreuil)의 로베르 데스노스 시립도서관에 다녀왔다. 나는 파리 서쪽 교외에 위치한 낭테르(Nanterre)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번 방문이 더욱 특별했다. 프랑스어로 ‘방리유(Banlieu)’는 파리 도심 바깥의 교외 지역을 뜻한다. 이 단어는 중세시대에 성벽이 있는 주요 도시 주변의 마을을 가리키는
도착한 도시의 모습은 중세의 모습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뾰족뾰족한 첨탑이 도시 곳곳에 있었고 조약돌로 시작되었다는 로열 마일(Royal Mile)의 도로가 햇빛에 반사되어 빛나고 있었다. 잠시 낭만을 즐기고 있을 때면 “우와, 저것 봐요. J. K. 롤링이 《해리포터》 주인공들의 이름을 지었다는 공동묘지가 나와요!”라고 소리지르는 귀여운 여행 메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