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8년, 열두 살 소년이 스코틀랜드에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앨러게니로 건너왔다. 아버지는 직공이었고, 공장이 들어서면서 일감을 잃었다. 새 나라에 도착하자마자 소년은 학교 대신 공장으로 갔다. 방직공장에서 보빈을 갈아 끼우는 일이었다. 하루 종일 기계 소리 속에 서 있는 열두 살짜리 소년에게 책은 사치였다.
그 소년의 이름은 앤드루 카네기였다.
토요일마다 열리는 문
얼마 후 카네기는 전신회사 사환으로 일하게 됐다. 하루 종일 전보를 나르고, 밤늦게야 집에 돌아오는 생활이었다. 책을 살 돈도, 책을 읽을 시간도 없었다.
어느 날 동료 사환 하나가 그를 데리고 어느 집 앞으로 갔다.
제임스 앤더슨 대령. 철강업자요 자선가였던 그는 매주 토요일, 자신의 개인 도서관을 동네 노동자 청소년들에게 열어주었다. 약 400권의 장서가 있는 소박한 도서관이었다. 하지만 카네기에게 도서관 문은 세상이 열리는 문이었다.
훗날 카네기는 앤더슨 대령이 “지식의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창문을 열어줬다”고 회고했다.
토요일마다 책 한 권을 빌리고, 다음 토요일에 돌려주고, 또 한 권을 빌렸다. 강의실도 없었고, 선생도 없었다. 소년의 대학은 매주 토요일 오후 앤더슨 대령의 서재였다.
노동자 소년의 첫 싸움
어느 날 도서관 측이 대출 규정을 바꾸려 했다. 앤더슨 도서관은 원래 ‘노동자 소년’이 대상이었는데, 대출 규정 해석을 둘러싸고 사환이 제외될 수 있다는 논란이 생겼다. 기술을 가진 노동자에게만 도서관을 열겠다는 것이었다. 사환은 기술직이 아니었다. 카네기는 신문사에 편지를 보냈다.
그는 서명란에 ‘직종은 없지만, 노동자 소년’이라고 적었다.
편지 한 통으로 그의 출입은 허가되었다. 열다섯 살 소년의 첫 번째 싸움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평생의 신념이 됐다. 책을 읽는 것은 특권이 아니라 권리라는 것.
철강왕이 되다, 그리고 기억하다
카네기는 이후 철도회사, 철강회사를 거치며 미국 최고의 부자 중 하나가 됐다. 1900년대 초, 카네기 철강회사는 미국 전체 철강 생산량의 4분의 1을 담당했다.
부가 쌓일수록 그는 토요일 오후의 그 도서관을 잊지 않았다.
“앤더슨 대령의 도서관에는 책이 약 400권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귀한 책들이었고, 책을 살 돈도 없던 그 시절 그 책들에서 얻은 기쁨과 가르침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내게 여유가 생기면 반드시 다른 사람들에게도 책을 빌려주겠다고 그때 결심했습니다.”
카네기가 훗날 회고록에 남긴 말이다.
서재에서 책을 보는 앤드루 카네기 ⓒAndrew Carnegie Foundation
2,509개의 답례
1881년, 카네기는 자신의 고향 스코틀랜드 던펌린에 도서관 하나를 지어 기증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1883년부터 1929년 사이, 총 2,509개의 카네기 도서관이 세워졌다. 미국 1,689개, 영국과 아일랜드 660개, 캐나다 125개,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 남아프리카, 뉴질랜드, 세르비아, 벨기에, 프랑스, 카리브해, 피지에 이르기까지.
총 기부액은 5,600만 달러에 달했다. 한 사람이 평생 지은 도서관이었다.
그는 도서관을 지을 때 조건을 하나 달았다. 건물은 내가 짓겠지만, 운영은 그 도시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 지역사회가 스스로 참여하지 않는 기관은 결국 일부의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다. 받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함께 키워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앤드루 카네기의 뜻에 따라 1904년 세워진 청동 조각상 ‘독서하는 노동자’ ⓒWikimedia Commons
앤드루 카네기는 훗날 앤더슨 대령의 동상을 세웠다. 자신이 앨러게니에 기증한 도서관 바로 앞에. 동상 받침대에는 이런 말이 새겨졌다.
‘서펜실베이니아 무료 도서관의 창설자, 제임스 앤더슨 대령에게. 그는 노동자 소년들에게 자신의 도서관을 열어주었고, 토요일 오후마다 직접 사서가 되어 책뿐 아니라 자신까지 내어주었다.’
책 400권을 토요일마다 열어준 한 어른이 소년 하나를 키웠다. 그 소년은 자라 세계 곳곳에 2,509개의 도서관을 지었다.
도서관이 사람을 키우고, 그 사람이 도서관을 세상에 돌려줬다.
앤드루 카네기(1835~1919)
스코틀랜드 출신의 미국 철강왕이자 대표적인 자선가이다. 가난한 이민 소년으로 미국에 건너와 전보 배달원에서 시작해 철강 산업으로 큰 부를 이뤘고, 이후 도서관과 교육·문화 사업에 막대한 재산을 기부했다.
카네기의 기부 철학은 오늘날에도 문제를 일시적으로 덮기보다 교육·도서관·연구처럼 사람과 제도를 키우는 방식으로 사회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런 관점은 공공도서관 확산, 교육재단, 연구지원 재단, 그리고 사회문제의 구조적 원인을 다루는 현대 자선 모델로 이어졌다.
또 카네기는 부를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사회를 위해 환원해야 할 사회적 책임으로 보았기 때문에, 오늘날 기업가 자선과 대규모 재단 문화의 중요한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그의 철학은 ‘많이 주는 것’보다 ‘오래 지속되는 변화를 만드는 것’을 중시하는 데 있었다.
서울시립대 휴먼라이브러리에서는 책이 아닌 ‘사람’을 빌릴 수 있다. 2000년 봄 덴마크 출신의 사회운동가 로니 에버겔로부터 시작된 ‘사람책’ 프로젝트는 현재 전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처음에 사람책은 난민이나 소수자 등 쉽게 만나기 어렵고, 목소리를 잘 들어볼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게 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휴먼라이브러리에서는 누구나 사람책이 되어서
두 명의 진행자가 일상에서 고민을 겪는 사람들의 사연을 받아서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소개해주고, 책의 좋은 구절을 읽어주는 팟캐스트!3화에서는 연애, 진로 고민이 있는 MZ 세대의 사연을 받아 ‘고요서사’를 운영하는 차경희 대표와 김연덕 시인이 책을 처방해주셨습니다. 진행자 소개 고요서사 차경희 대표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서 아주 작은 문학서점 ‘고요서사’
집에서 아이와 책으로 노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우리 아이가 어떤 놀이를 좋아하는지 먼저 찾고, 나뭇잎이나 휴지심, 색종이 등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준비하면 된다.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현직 사서가 ‘엄마는 편하고 아이는 신나는 집놀이, 책놀이’를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