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미국 켄터키주는 여러 위기가 한꺼번에 덮친 땅이었다. 대공황으로 석탄 광산들이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고, 마을에는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들의 생활수준은 처참했다. 전기나 상하수도를 갖춘 마을은 드물었고, 도시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도 없었다.
생필품을 사러 가는 것조차 쉽지 않은 환경에서 책은 당연히 그들의 손에 닿을 수 없었다. 1932년 조사에 따르면, 켄터키주 주민의 약 63퍼센트가 공공도서관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켄터키주 남쪽 애팔래치아 지역에서는 그 비율이 약 77퍼센트에 달했다. 그렇다고 그들이 책을 원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책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책이 올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켄터키의 산길 위에, 말을 탄 여성 사서들이 나타났다. ‘북 위민(Book Women)’이라 불린 그녀들은 책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직접 책을 배달했다.
사람들이 올 수 없다면, 도서관이 가면 되지 않을까?
말을 타고 책을 배달하는 북 위민은 대공황 시기 미국 정부가 추진한 공공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팩 호스 라이브러리 프로젝트(Pack Horse Library Project)’라 불린 이 사업의 본래 목적은 일자리 창출이었다. 실업자가 넘쳐나던 시절, 정부는 사람들에게 급여를 지급할 수 있는 공공 프로젝트를 추진할 필요가 있었고, 켄터키 산간 오지로 책을 배달하는 일도 프로젝트 목록에 포함되었다.
그런데 사업이 시작되자 예상치 못한 장면이 펼쳐졌다. 지원자의 대부분이 여성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말은 자비로 마련해야 했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기꺼이 책을 배달하겠다고 나섰고, 직접 말에 올라탔다.
그녀들은 새벽부터 책과 잡지를 말에 싣고 길을 나섰다. 하루에 넘어야 할 고개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한 주에 이동하는 거리만 평균 150에서 200킬로미터에 달했다. 포장도로는 거의 없었다. 눈이 내리거나 개울물이 불어나면 말을 탄 채로 물살을 가로질렀다. 폭설이 내리면 말 대신 노새를, 노새도 안 되면 걸어서 이동했다.
그녀들이 배달한 것은 책만이 아니었다. 신문 기사, 요리법, 뜨개질 도안, 농사에 필요한 기술이나 정보,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과 노래 가사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출판된 책이 없을 때는 직접 만든 스크랩북으로 사람들에게 필요한 지식을 전달했다. 같은 산에서 나고 자란 그녀들이었기에 오지의 독자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보통 2주에 한 번씩 한 마을을 방문했다. 가정집 현관이 도서관 창구가 되었고, 교회 한쪽 구석이 반납 장소가 되었다. 고정된 건물도, 번듯한 서가도 없었지만 서비스는 놀랍도록 꼼꼼했다. 북 위민들은 방문 카드를 직접 관리했고, 어느 집에서 무엇을 읽었는지, 다음에는 어떤 책이 필요한지 기록했다.
프로젝트가 가장 활발했던 1930년대 후반에는 켄터키 전역에 약 30개의 팩 호스 도서관이 운영되었다. 1938년에는 29개 마을에서 약 274명의 북 위민들이 수만 가구에 수십만 권의 책을 배달했다.
어느 작은 마을의 북 위민 그레이스 루카스(Grace Lucas)는 어둠 속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그녀의 두 아이는 아직 잠든 시간이었다. 말을 살 형편조차 되지 않았던 그녀는 빌(Bill)이라는 이름의 밤색 말을 주당 50센트에 빌려야 했다. 빌은 온순하고 믿음직한 동반자였다. 그렇게 그녀는 빌과 함께 하루 100킬로미터를 이동했다. 겨울이면 개울물이 말의 배를 적셨고, 봄비가 내리면 강물이 안장 가방 높이까지 차오르기도 했다. 한번은 밤새 쏟아지는 빗속에서 길을 잃어 낯선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했던 일도 있었다. 그래도 그녀는 묵묵히 그 길을 나섰다. 책이 젖지 않도록 애를 쓰며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사람들이 책을 원했으니까요.”
루카스는 이후 인터뷰에서 당시를 떠올리며 사람들이 책을 원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처음부터 배달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런 길을 걸었던 것은 루카스만이 아니었다. 어느 가을날, 산길을 오르던 한 북 위민이 통나무집 앞에 말을 세웠다. 그곳에 아픈 아이가 살고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안장 양쪽에는 각각 25권씩, 50권의 책을 담은 두 개의 캔버스 가방을 매달고 있었다. 외딴 곳에 떨어진 집까지 올라가는 내내 그녀는 울퉁불퉁한 바위와 통나무 다리가 이어진 험한 계곡 길을 따라가야 했다.
깨끗한 두 칸짜리 통나무집 안으로 들어서자 낡은 침대 위에 일곱 살 소녀가 누워 있었다. 곁에는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소녀는 일 년 전 등을 다쳐, 그 이후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북 위민은 소녀 곁에 앉아 그림책을 펼쳐 읽어주었다. 그림책 이야기가 끝나고 소녀가 말했다.
“글을 가르쳐주세요, 책 아줌마. 그러면 더 이상 외롭지 않을 것 같아요.”
그녀가 그날 새벽 4시 반에 출발해 소녀의 집에 도착한 시각은 저녁 6시였다. 하루에 이동한 거리만 약 100킬로미터였다.
한번은 길을 지나가던 북 위민에게 한 남자가 달려와 항의한 일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아이들이 온종일 책만 붙들고 앉아 일을 하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농번기에는 책을 두고 가지 말아 달라는 집도 있었다. 책을 두고 가면 아이들에게 일을 시킬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은 성경이나 바느질, 통조림 만드는 방법, 요리 레시피같이 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 이외에 다른 책은 필요 없다고도 했다. 또 어떤 집에서는 아들이 밤마다 책을 읽는 통에 등잔 기름이 모자란다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북 위민을 맞이했다. 반면 어떤 마을에서는 서른두 명의 사람들이 북 위민을 기다리고 있던 일도 있었다. 그녀가 올 때 나는 말발굽 소리를 듣고 한자리에 모인 것이었다.
몇몇 사람들의 불만 섞인 목소리, 말발굽 소리를 듣고 모인 마을 사람들의 행동은 곧 마을에서 책이 어떻게 읽히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들의 불평은 책이 그만큼 누군가에게는 간절히 필요했다는 사실이었고, 마을 사람들이 한 곳에 모였다는 것은 그들이 책 한 권을 돌려가며 함께 읽었다는 뜻이었다.
도서관 건물도 없고 열람실도 없었지만, 말이 멈추는 그 자리가 그날만큼은 도서관이 되었다. 그리고 밤새 책을 읽느라 켜놓은 등잔은 세상과 이어지는 작은 불빛이었다.
북 위민 중에서 정규 교육을 받았거나 사서 자격증을 가진 사람도 드물었다. 그러나 그녀들이 한 일은 단순히 책을 배달하는 일만이 아니었다. 북 위민들은 어떤 책을 누구에게 가져갈지, 어떤 집에 어떤 자료가 필요한지 스스로 결정했다. 그녀들에게는 한 사람의 생활을 읽어내는 능력이 있었다. 책의 수준과 개인의 상황을 고려하고 그것에 맞추는 감각, 낯선 자료를 지역의 신뢰 안으로 들여오는 기술, 그리고 다시 찾아가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꾸준함이 켄터키 산길 위에서 여성 사서들이 전문성을 나타내는 방식이었다.
팩 호스 라이브러리 프로젝트는 1943년 무렵 끝났다. 정부의 예산이 줄고, 전쟁과 함께 사회 분위기도 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사업은 종료되었다. 그리고 켄터키 산간 지역에 위치한 마을을 세상과 잇는 도로와 다리가 놓이기 시작했다. 그 위로 자동차가 달리기 시작했고, 그것이 북 위민을 대신했다.
우리는 공공도서관을 항상 열려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도서관 하면 조용한 건물 안에서 책장 사이를 걷고, 낮은 목소리로 질문하고, 대출대 앞에서 책을 확인하는 일을 하는 여성 사서의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북 위민의 일화는 도서관이 그저 문을 열어두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하게 만든다.
1930년대 켄터키의 여성 사서들은 이 질문에 말없이 대답했다. 진흙과 개울과 추위와 의심을 지나, 책을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는 곳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녀들이 멈추는 자리가 그날의 도서관이 되었고, 그렇게 도서관은 그 길 위에서 한 번 더 넓어졌다.
1916년 겨울, 사서들의 손에 얇은 소책자가 한 권씩 조용히 건네졌다. ‘독서의 일곱 가지 기쁨’이라는 제목의 16페이지짜리 작고 얇은 책자였다. 펼치면 한 호흡에 읽어 내려갈 수 있을 것 같고, 덮으면 금세 잊힐 것 같은 이 작은 책 안에는 오늘 우리가 ‘사서’라고 떠올리는 얼굴이 담겨 있었다.단정한 옷차림의 차분한 목소리, 그리고 책 곁에서 오래
상담 후 종결이 되면 대개는 마음 밖으로 내보낸다. 최대한 역전이를 조심하려 하지만 깊게 내 마음을 쿡쿡 찔러올 때가 있어 되도록 이 작업을 서두른다. 그러나 유독 한 어머니가 자꾸 떠오른다. 힘들게 공부를 강요당했던 아들이 들고 왔던 사례. 미치도록 엄마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몸부림친 아들의 처절한 고백. 자신의 철저한 계획 속에 아들을 묶어놓고 아들이
1. 내가 사는 동네에 아주 작은 공원이 있다. 골목의 서른 개쯤 되는 계단을 올라가 딸랑 그네 네 개가 있을 뿐인 놀이터로 접어들면, 근처 어느 집의 열린 대문 안이나 화단 덤불에서 서성이던 ‘귀(貴)’가 카트 바퀴 구르는 소리를 듣고 울면서 쫓아와 맞아준다. 하소연하는 듯도 하고 따지는 듯도 한 울음소리다. 귀의 정식 이름은 귀부인. 3년 전엔가,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