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사람을 가두는 감옥이 있고, 사람을 키우는 도서관이 있다. 그런데 어떤 특별한 장소에서는 이 둘이 하나가 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해안에서 약 7킬로미터 떨어진 대서양 한가운데, 차가운 바람이 그치지 않는 로벤섬이 있다. 넬슨 만델라는 이곳에 있는 빅터 베르스터 교도소에서 1964년부터 1982년까지, 수감번호 466/64로 살았다. 그의 감방은 가로 2미터 세로 2.4미터였다. 바닥에는 돗자리 하나, 양동이 하나가 있었고 창문으로는 감방의 안뜰이 보였다.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은 그를 이 섬에 가두는 것으로 세상에서 지워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만델라는 그 섬에서 조용히, 그리고 집요하게 공부했다. 그리고 그의 공부를 가능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도서관이었다.
아흐메드 카트라다, 섬의 사서
로벤섬 B구역에는 특별 정치범들이 수용되었다. 만델라를 비롯해 아파르트헤이트에 저항하다 종신형을 선고 받은 지도자들이었다. 이 구역에는 작은 도서관이 하나 있었고, 거기서 정치범들에게 책을 추천해주고 그들의 교육을 맡은 핵심 인물이 있었는데 그가 아흐메드 카트라다(Ahmed Kathrada)였다. 그가 여기서 일종의 사서 역할을 했다.
아흐메드 카트라다 (출처: 위키백과)
카트라다 역시 종신형을 선고받은 리보니아 재판의 피고인이었다. 그는 26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그리고 그 긴 세월 동안 그는 책과 함께 살았다. 감옥 당국은 도서관에 들어오는 모든 책을 검열했고 ‘체제를 위협하는’ 내용이 있으면 바로 압수했다. 그런데 검열관들은 책을 잘 몰랐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통과됐지만 인도 요리책은 금서가 됐다. 셰익스피어 전집은 성경이라고 속여야 겨우 들여올 수 있었다.
카트라다는 훗날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 중에는 글자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ABC부터 가르쳤어요. 로벤섬을 떠날 때 문맹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서 배웠습니다.”
“섬 안에서 이 인용문들은 오랜 친구 같았습니다. 20년 동안 섬에 있으면서 제게 진짜 친구란 책과 사람뿐이었으니까요.”
- 아흐메드 카트라다
감옥에서 쓴 자서전
만델라는 도서관에 있는 책만 읽지 않았다. 그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로벤섬에 수감된 지 10년째 되던 1974년부터 그는 비밀리에 자서전을 쓰기 시작했다. 낮에는 채석장에서 석회암을 캐는 강제 노동을 했고, 밤에는 비좁은 감방에서 글을 썼다. 카트라다와 동료 월터 시술루가 기억을 되살려주고 원고를 검토하고 격려도 해주었다.
원고는 작은 글씨로 빽빽하게 쓰인 세 권의 노트로 완성되었다. 그들은 이것을 코코아 상자 속에 숨겨 정원 땅 밑에 묻었다. 그런데 교도소 당국이 그것을 발견하고 압수해버렸다. 수십 년의 기억이 사라질 뻔한 순간이었다. 다행히 또 다른 필사본이 섬 밖으로 몰래 빠져나갔고, 1994년 그가 대통령이 된 해에 ‘자유를 향한 긴 여정’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나왔다. 도서관이 없었다면, 책을 사랑하는 동료들이 없었다면, 그 자서전은 끝내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만델라가 로벤섬에서 읽은 책들 중에는 놀라운 것이 있었다. 아파르트헤이트의 설계자 중 한 명인 존 보르스테르(John Vorster) 수상의 생애와 정치적 역정을 다룬 전기와 회고록이었다. 보르스테르가 직접 쓴 글은 아니었지만 만델라는 그 책을 꼼꼼히 읽었다. 증오의 대상인 보르스테르에 대한 글을 왜 읽었을까? 그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적을 이해하지 못하면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나는 그 책에서 배울 점을 찾았습니다.” 이것이 책에서 배운 지혜였다. 한쪽 시각으로만 가두지 않는 것, 반대편의 생각을 읽고 이해하고 그 위에서 더 높이 서는 것 말이다.
그가 27년 만에 석방되던 1990년 2월 11일, 세계가 기적이라 부른 것은 사실 그 27년 동안 쌓인 내공의 결과였다. 분노를 지혜로 바꾸는 공부, 원한을 화해로 승화시키는 독서, 로벤섬의 도서관은 그 변화를 가져온 조용한 현장이었다.
인빅터스 — 굴복하지 않는 자
만델라가 감옥에서 동료들과 함께 암송하던 시가 있었다. 19세기 영국 시인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의 〈인빅터스(Invictus)〉였다. 인빅터스는 라틴어로 ‘굴복하지 않는 자’를 뜻한다.
나를 감싸는 밤, 온통 칠흑같이 어두운 밤
나는 신들에게 감사한다, 내 굴복하지 않는 영혼을 위해
...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나는 내 영혼의 선장이다.
이 시는 책 속에 있었다. 도서관 속에 있었다. 그리고 도서관이 허락되지 않았다면, 이 시는 만델라의 손에 닿지 못했을 것이다. 책 한 권, 시 한 편이 어떻게 한 사람의 정신을 27년 동안 지탱할 수 있는지, 이 이야기가 그 증거이다.
대통령이 된 죄수번호 466/64
1990년 2월 11일, 만델라는 27년 만에 교도소 문을 걸어 나왔다. 그의 나이 71세였다. 그로부터 4년 후,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첫 번째 흑인 대통령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그토록 오랜 세월 분노와 억울함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까?” 만델라는 이렇게 답했다. “교도소 문을 나서면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만약 여전히 그들을 증오한다면, 나는 여전히 그들의 감옥 안에 있는 것이라고. 나는 자유로워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내려놓았습니다.”
그 내려놓음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수십 년의 독서로, 철학으로, 역사로, 시로 다져진 내면의 힘이었다. 로벤섬의 도서관은 그를 가두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해방시켰다.
왜 이 이야기가 중요한가
로벤섬의 이야기는 단순히 한 위대한 인물의 전기가 아니다. 그것은 책과 배움이 인간의 존엄을 얼마나 깊이 지탱해줄 수 있는지에 대한 살아 있는 증거다.
교육학자들은 로벤섬을 “역사상 가장 특이한 학습 공동체 중 하나”로 분석한다. 극도로 제한된 환경에서 죄수들은 서로를 가르치고, 책을 돌려 읽고, 토론하고, 함께 성장했다. 만델라를 포함한 수십 명이 이 섬에서 학위를 취득했다. 카트라다는 혼자서 네 개의 학위를 받았다.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이 그들에게서 자유를 빼앗을 수는 있었지만, 책에 대한 열망을 빼앗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 책들이, 그 도서관이, 결국 자유를 가져온 사람들을 키워냈다. 그리고 그 자유가 세상을 바꾸는 희망이다.
대중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나는 무료 도서관을 선택했다. 왜냐하면 도서관은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지만, 스스로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앤드루 카네기 1848년, 열두 살 소년이 스코틀랜드에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앨러게니로 건너왔다. 아버지는 직공이었고, 공장이 들어서면서 일감을
도서관과 연애하며 아이들에게 읽어준 책이 하루 30권, 딸 셋 모두 책을 즐기는 아이가 되었다. 아이가 첫 돌을 맞고 난 후 ‘엄마’나 ‘아빠’, ‘맘마’ 같은 의미 있는 단어를 내뱉기 시작하면 아이를 어떻게 교육시켜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 이와 같은 고민으로 첫 아이가 세 살이 되었을 때부터 문턱이 닳도록 도서관을 드나들었던 안병화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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