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도라는 비인기 종목을 21년째 하고 있다. 운동 취미를 묻는 질문에 러닝, 헬스 혹은 요가, 필라테스라 답하는 사람들 속에서 혼자 “검도해요”라고 말하기란 여전히 쑥스럽다. 대학 동아리로 시작한 검도를 마흔인 지금까지 할 줄이야. 내성적인 나를 신입회원으로 받은 선배들도, 운동이라곤 지각을 피하기 위한 등굣길 뜀박질이 전부였던 나도 몰랐다.
게으른 사람인데 검도는 힘들어서 좋았다. 검도부 선배들은 죽도를 휘두르며 앞뒤로 뛰는 ‘빠른머리치기’를 보통 100~200번 시켰다. 때로는 여름 특훈으로 천 번을 하라고도 했다. 물집과 굳은살로 뒤덮인 손. 허벅지의 얼얼한 근육통. “악!” “으악!” 손잡이를 잡고 강의실 계단을 내려갈 때면 비명이 튀어나왔다. 꼴사나웠지만 죽도를 쥘 때만큼은 부정적인 생각과 우울감이 멈춰져 좋았다.
‘아무도 읽지 않는 세계’에 기대어
대회의 기억은 그리 유쾌하질 않다. 검도가 좋아져서 계속했더니 선배들이 나를 대회에 내보내기 시작했다. 춘계·추계 대학연맹전에서 늘 예선 탈락자였다. 상대에게 쫄아 벌벌 떨다가 눈 깜짝할 새 두 대를 빵빵 맞고 돌아서야 했다. 계속 지는 기분이 불쾌했지만, 이기려 애쓰기보다 ‘아마 질 거야. 난 잘 못하잖아’라고 여기는 편이 더 쉬웠다. 검도든 뭐든, 세상에서 뭔가를 잘 하는 사람은 따로 있겠지. 그래서였을까. 마음 어딘가에 ‘져버릴 나’를 정해뒀다. 이기지도 잘 하지도 못하는 것을, 그저 좋아서 계속하기로 했다.
잘 못 하는 걸 계속 좋아하는 일에는 좀 바보 같은 구석이 있다. 회사였다면 진즉 정리해고감인데, 내 돈 내고 배우니 누가 날 자를 수도 없고……. 이때라도 검도 그만두고 K-pop 댄스를 배웠다면 지금쯤 ‘인싸’가 됐을까. 이유를 모르고 계속 좋아하는 마음을 품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책방 주인인 동네 친구가 검도하는 내 생각이 났다며 시 한 편을 보내줬다.
가라테란 외로운 종목입니다 한국에선 더욱
고요합니다
거울을 보며 척추를 혼자 교정하면서
대쪽 같은 품새를 익혔다고요
결국 그는 동메달 결정전에서 떨어집니다
개운하다는 듯이 수건에 얼굴을 씻으며
코를 박고 혼자 오래 울었습니다
아무도 읽지 않는 세계가 존재하여서
그 빛에 기대 대나무가 솟았습니다
- 고명재, 〈비인기 종목에 진심인 편〉,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문학동네, 2022)
그즈음 나는 검도를 꾸준히 해왔지만 잘 한단 확신도, 함께 수련하는 사람들 중에 마음 맞는 사람이 있다는 실감도 없이 지냈다. 친구가 보내준 시는 종목만 다를 뿐, 내가 수련하는 마음을 떠올리게 했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지만 굳이 공들여 수련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놓치지 않으려 아등바등하던 내 모습과 닮았다.
동질감에는 묘한 회복력이 있다. 내 마음을 누군가 대신 말해주면 퍽 고맙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누군가의 글에 위로받자, 막연한 마음이 피어났다. 수련하면서 느낀 마음을 드러내볼까. 화려한 존재감의 검도 실력자는 아니지만, 그 마음이 누군가에게 전해질 때 위로가 될지 몰라.
승패보다 중요한 게 뭔고 하니
검 끝에서 물과 불, 번개가 뿜어져 나오는 장면을 봐온 소년만화 팬들에게 미안하지만, 현실의 검도 기술은 사실 몇 개 없다. 머리, 손목, 허리, 찌름. 도장에서의 수련은 대부분 그런 기본 타격과 대련연습의 반복이다. 근데 그 단순 반복의 힘이 무섭다.
수련을 시작하고 3년, 5년쯤까지는 실력이 제자리 같았다. 그렇게 6년, 10년을 넘겼다. 계속하는 데만 의의를 두고 수련했는데, 언제부턴가 점점 쉽게 질 수 없는 사람이 되기 시작했다. 15년, 20년을 넘겼다. 1회전 탈락 단골에서 2회전, 3회전, 4회전으로. 시 대회 개인전에서 3위, 준우승을 했고, 생활체육인이자 여성으로서는 드문 5단이 됐다.
그 과정에서 서로 다른 직업, 나이, 성별인데도 검도라는 같은 길(道)을 간다는 이유로 함께 수련하는 사람들이 점점 좋아졌다. 선배는 내가 가야 할 길을 먼저 가는 사람, 후배는 내가 왔던 길을 걸어오는 사람. 낯가림이 심한 나여도, 같은 길을 가는 친구가 잔뜩 생긴 기분이 들었으므로, 그렇게 타인을 마음에 들여갔다. 운동이 끝나면 함께 맥주를 마셨다. 큰 대회에도 같이 나갔다. 한 공간에서 어울리며 서로의 서툰 모습에 싸우다가도, 서로의 못난 모습을 버티고 화해했다. 그렇게 사람들을 좀 더 좋아하게 됐다. 그런 마음이 쌓일 무렵, 수련생활을 그림과 글로 담기 시작했다.
수련에 대해 끼적였던 글과 그림은 출판사 두 곳에서 번듯한 책이 돼 나왔다. 판매부수가 초라한 것 같다만, 때로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지 종종 독자 소식이 들린다. 감사한 일이다.
사람들은 이제 나를 ‘사범님’ 혹은 ‘작가님’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나는 검도하기 전보다 대단해졌는가. 잘 모르겠다. 여전히 기본기가 잘 안 된다. 대회에서 숱하게 1회전 탈락한다. 단이 낮은 사람들한테 얻어맞기 시작해 더 모양 빠진다. 최근에는 다니던 도장이 큰 싸움에 휘말렸다. 학교와 구청 등이 예산을 들여 세운, 지역주민에게 개방돼 운영되던 검도부 공간을 학교가 안내문 한 장 붙여놓고 폐쇄 통보를 했기 때문이다. 10년 가까이 운동하던 공간을 되찾으려 도장 선배들과 몸과 마음을 팍팍 써가며 학교랑 싸우는 중이다.
아직 내 검도 여정에는 이렇다 할 해피엔딩이 안 보인다. 그래도 검도를 안 하는 것보단 하는 게 낫다. 뭔가를 좋아하는 게 꼭 그에 걸맞은 보답을 받아서도, 내가 좋아하는 일에 두각을 드러내서도 아닌 것 같다. 묵묵히 버틴 시간, 막연하게라도 나를 믿는 마음, 보는 이가 없는 순간조차 조금이라도 더 하게 되는 연습들. 그런 것들이 켜켜이, 아주 켜켜이 쌓였을 때, 그 시간의 겹들은 예상치 못한 선물을 줬다. 그 선물은 승단 혹은 대회 입상으로, 열띤 응원으로 드러난다. 혹은 나를 지켜봐주는 선배들의 잔소리나 선배들의 힘듦을 알아채고 손 내밀어주는 나 자신일 때도 있다. 검도는 나를 풍성하고 단단하게 만들어준 것 같다. 조금은 타인에게 곁을 내어주고, 다른 사람의 고민을 버텨줄 줄 아는 인간으로 자라난 느낌.
검도를 계속하는 걸 후회 안 하는 이유다.
(선배들이 동의할지는 나중 문제로 해두겠다.)
이소_작가
역사문화학부를 졸업하고 온라인 기반의 콘텐츠 제작자로 일하고 있다. 검도 수련을 즐기며, 인스타그램, 브런치 등 SNS에서 일상을 소재로 글과 그림 작업을 동시에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매일 수련 마음 단단》 《검도: 몸과 마음을 쭉 펴는 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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