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1988년 창작과비평 여름호를 통해 데뷔를 해서 《지독한 사랑》 《슬픈 게이》 《밤의 공중전화》 《수련》 《손가락이 뜨겁다》 《레슬링 질 수밖에 없는》 《검은 사슴은 이렇게 말했을 거다》 《줄무늬 비닐 커튼》 등의 시집을 냈어요. 이명세 감독하고 둘이서 쓴 《주고받다》라는 산문집을 냈고 올 2월에 화가 이상남의 작품론에 대해서 《그리되, 그리지 않은 것 같은,》이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2000년부터 2008년까지 문학과지정사 대표이사로 일했고 2009년부터 서울예대 문창예창작과 교수로 있다가 2023년 2월에 정년을 했습니다.
Q 1988년 창작과비평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하시고 35년이 넘게 시인으로 살아가고 계시는데요, 시작 활동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A 제가 중학교 때 남녀공학에 다녔는데, 어떤 소녀로부터 교문 옆 히말라야시다나무 아래서 시집 한 권을 받았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을 했기 때문에 주로 저는 사택에서 살았는데 마을하고는 좀 떨어져 있었거든요. 그 당시에는 아이들이 대부분 일을 했기 때문에 소에게 소꼴을 먹인다든가 아니면 집안일을 돕는다든가 해서 거의 혼자서 지냈어요. 그러다 보니까 학교 도서관이 제 놀이터였고 책을 많이 접했던 것 같습니다. 《폼페이 최후의 날》이라든지 《소공녀》 《테스》 같은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시는 별로 접해보지를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소녀가 바이런 시집을 저한테 선물하는 바람에 제가 시에 관심을 갖게 됐고, 단박에 저를 사로잡는 어떤 것이 있었어요. 그 시를 한번 읽어볼까요? 바이런 시 중에서 〈몰타섬에서 방명록에〉라는 시가 있는데 그 시를 읽고 단박에 제가 좋아하게 됐습니다. 이걸 읽는 순간 너무나 강력하게 저를 사로잡았기 때문에 시를 쓰고 싶다는 꿈을 그때부터 꾸었던 것 같습니다.
Q 올해 문학과지성사 시인선이 600호를, 창비 시인선이 500호를 맞이했습니다. 지금 시대에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A 섬세함과 집중. 이 두 가지를 얘기해보고 싶은데, 섬세함은 신중함 그리고 세밀함, 이타성, 부드러움과 관련이 있습니다. 집중은 열정, 사랑하고 관련이 있겠죠. 시는 거친 세상에 섬세함으로 맞섭니다. 면전에서 시위하듯이 항의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하게 지금 있지만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어떤 섬세함과 집중을 만들어내고, 그것들을 새롭게 사람들한테 눈에 띄게 함으로써 이 시대에 대항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릴케가 말년에 두이노 성에 초대를 받아가지고 거기서 얼마간 지낸 적이 있습니다. 두이노의 성 사진을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절벽 위에 있는 성이거든요. 굉장히 아름다운 성인데 어느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에 릴케가 절벽 아래로 산책을 나갔다가 비바람 속에서 어떤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 목소리를 릴케는 시에서 ‘천사’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종교적인 천사가 아닙니다. 삶과 죽음을 매개하는 어떤 힘 같은 것을 말합니다. 릴케가 들었던 목소리를 저는 <두이노의 비가> 1번 시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읽어볼게요.
…… 아름다운이란
아직은 우리가 가까스로 견디는 무서움의 시작일 뿐이기에.
아름다움을 우리가 그토록 놀라워함은 그것이 우리를
파괴하기를 의젓이 물리치기 때문.
- 〈두이노의 비가 1〉 중에서(《두이노의 비가/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안문영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1)
이 구절로부터 시작해서 10년에 걸쳐 릴케는 연작시를 쓰게 됩니다. 10편의 연작 장시를 쓰게 되는 것이죠. 삶과 죽음을 매개하는 어떤 힘, 그게 섬세함의 힘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 시대에 시를 읽는 것은 눈에 띄지 않는 어떤 섬세함과 집중을 되살려내서 거친 세상에 맞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기후위기 시대에 시가 할 수 있는 역할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A 신석기 시대에 농경사회부터 인간중심주의가 시작이 돼가지고 지금까지 위세를 떨치고 있거든요. 인간 외의 사물들을 마음대로 바꾸고 착취하고 휘두르는 게 바로 인간중심주의인데, 환경운동이나 실천 같은 것도 굉장히 중요하겠지만 어떻게 하면 인간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이 시에 필요하지 않을까. 어떤 질문에 대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기후위기 시대에 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봤습니다.
시가 정보 소통이 아니고 언어 행동, 그러니까 정향 행동(방향을 정하는 행동)이라고 칠레의 생물학자 움베르토 마투라나가 말씀하셨는데요. 그 말은 바로, 인지라는 게 이제 앎이잖아요. 앎이 없이는 행동하기가 힘들거든요. 정향 행동이라는 것은 뭔가 알고 어디로 갈지 방향을 정해주는 거죠. 언어 자체가 그런 정향 행동이다, 이렇게 본다면 시가 중요한 몫을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그런 생각이 듭니다. 김춘수 시인이 무의미 시를 얘기했었는데, 인간의 언어 자체를 인간의 언어에서 확대를 시킨 거죠. 확대를 시켜서 무의미 시, 그러니까 의미가 없는 시를 주창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무의미 시가 사실은 <처용단장>이라는 연작시로부터 시작이 됐거든요. 그 시의 첫 부분을 한번 읽어보면, 거기에 사실 인간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무의미 시는 여기서 조금 더 발전을 해가지고 의미 없는 소리를 시로 만드는 그런 시도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10년 전에 프랑스에서 프랑시스 퐁주라는 시인이 《사물의 편》이라는 시집을 내면서 인간보다 사물에 주목하는 시들을 썼습니다. 최근에 오면 돌아가신 오규원 시인의 후기 시, ‘날 이미지 시’라고 하죠. 그 후기 시들에서 바로 인간의 시선을 최대한 억제해가지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더 근본적으로 기후위기를 초래한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될 것인가, 그런 것에 대해 시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교수님의 인생에 큰 충격을 준, 변화를 준 시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A 제가 고등학교 3학년 입시 준비로 굉장히 바쁜, 열심히 입시 준비를 해야 될 그 시점에 선배로부터 정현종 시인의 《고통의 축제》라는 시집을 선물로 받았어요. 거기 실린 시들 중에 〈사물의 꿈〉이라는 시들이 있거든요. 연작시였는데 그중에 〈나무의 꿈〉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 시를 읽고 매료당했는데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그 잎 위에 흘러내리는 햇빛과 입 맞추며
나무는 그의 힘을 꿈꾸고
그 위에 내리는 비와 뺨 비비며 나무는
소리 내어 그의 피를 꿈꾸고
가지에 부는 바람의 푸른 힘으로 나무는
자기의 생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는다.
- 〈사물의 꿈 1 - 나무의 꿈〉(《고통의 축제》, 문학과지성사, 정현종, 2002)
도서관에 가서 이제 입시 공부를 해야 되는데 입시 공부는 뒷전으로 밀리고 열심히 모작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필사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어떤 주제를 가지고 비슷하게 써보았어요. 그 시에 매료당한 어떤 것을 해소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서울예대에 시험을 봐서 입학을 하게 됐는데,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가니까 강당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사진도 본 적 없는데 첫눈에 그 사람이 정현종 시인이구나라는 생각이 단박에 들었어요. 마치 운명처럼 감격을 느꼈는데, 내가 열심히 좋아하고 모작을 했던 정현종 시인한테 시를 배운다고 생각하니까 얼마나 감격스럽겠어요. 제가 시를 써야겠다는 꿈을 꾸다가 그걸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어떤 계기가 된 거예요.
Q 최근에 시 쓰기에 변화를 준 사건 같은 게 있나요?
A 최근에는 책이 저한테 삶의 많은 변화를 갖다 주고 어떤 충격을 주는 편인데, 특히 철학 책을 읽으면 생각하는 방법 같은 것을 좀 배울 수 있는 것 같아요. 굉장히 고착된 생각을 깨뜨리는 데 철학책이 굉장히 저한테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작년부터는 현대 음악을 들으면서 굉장히 행복감을 느끼는데, 음악을 들으면 어떤 건축물이 떠올라요. 건축물이 떠오르는 이유가, 어떤 형식적인 구조물에 대한 아름다움을 음악을 통해서 제가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그 형식적인 아이디어가 시를 쓰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최근에 쓴 시가 하나 있는데 노랑개자리에 대해서 쓴 시거든요. 노랑개자리는 제주도 오름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식물입니다. 그 식물에 대한 시를 쓰면서 피아니스트 김선욱 씨가 연주한 진은숙의 피아노 협주곡 몇 구절을 제가 집어넣었습니다. <노랑개자리>라는 시의 일부분인데요.
상상을 채찍으로 후려치는 음들이 있다. 진은숙의 피아노협주곡은 초원을 낮게 기어가는 노랑개자리다. 기억을 날카롭게 갈아내고 들리는 감각을 그 자체를 과대평가한다. 청각은 모든 감각의 덩어리 위로 미묘한 잎을 내민다. 의식의 낟알에 불로 달군 돌들을 던지며
뾰족한 후각의 기쁨 위에 피아노 소리의 노랑 꽃들을 던진다.
시에서 언어라는 것은 의미를 가리키기보다는 어떤 형식적 구조물의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부분이 아마 음악하고 상통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제가 그렇게 느끼는 것이죠. 노랑개자리를 봤을 때 그 모양이 같이 떠오르고, 진은숙의 피아노 협주곡을 들으면서요. 진은숙 선생님이 그 피아노 협주곡을 발리의 전통 악기 소리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하게 됐다고, 어디선가 얘기한 걸 제가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걸 읽기 전 제가 음악을 들었을 때 비탈을 기어오르는 어떤 노랑개자리를 자꾸 떠올리게 됐던 것 같아요. 그렇게 <노랑개자리>라는 시를 쓸 때 음악에 대한 구절을 삽입하게 된 것 같습니다.
Q 시가 어렵다고 하는 독자에게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팁을 주신다면요?
A 시가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시를 읽으면서 자꾸 해석을 하려고 해요. 시의 행들이, 구들이, 문장들이 주는 어떤 의미를 자꾸 해독하려고 하기 때문에 어렵게 느껴진다고 생각합니다. 시를 읽으면서 시가 보여주는 어떤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떠올리면 쉽게 시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고요.
음악은 사실 그 소리가 발현하는 순간, 소리가 울리는 순간 그 소리가 소멸하잖아요. 음이 소멸하잖아요. 공중에 흩어져 소멸하는데 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읽는 순간 그것이 반짝 빛났다가 쓰러지죠. 그러니까 사라지는 그런 점에서 시와 음악은 굉장히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죠. 왜 사라져? 페이지 위에 있는데. 그렇게 말한다면 음악 역시 악보 위에 있죠. 그런데 종이 위에 있는 악보를, 조금 전문적으로 훈련이 안 된 사람은 거기서 소리를 들을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연주가가 악보를 보고 연주를 해서 음악으로 구체화시켜야지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거잖아요. 마찬가지입니다. 페이지 위에 있는 시도 독자들이 마치 연주자처럼 그 시를 읽을 때 비로소 시의 구체성을 띄고 발현이 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똑같은 곡을 연주해도 연주자마다 다 다르잖아요. 그렇듯이 독자들도 시를 연주자처럼 읽어주시면 시가 훨씬 더 잘 읽히지 않을까, 그런 소망을 가져봅니다.
Q 시에서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 영화나 그림 등에서 ‘시적’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을 때 한림원에서 “강력한 시적 산문을 쓴 현대 산문의 혁신가”라고 평가했는데요,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시적이다’라는 말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요?
A 지금 말씀하신 대로 ‘시적’이라는 말을 여러 군데 쓰잖아요. 얼핏 듣기에는 아름다운 것이 시적인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죠. 그런데 또 이런 말이 있어요. ‘시적 아름다움’. 시적이라는 말은 뭐라고 파악할 수 없는 낯선 것하고 맞닥뜨렸을 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들을 느꼈을 때 그게 바로 시적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렇게 말해본다면 저는 시적이라는 말을 의미가 생기기 이전에 매혹당하는, 의미가 생기기 이전에 생기는 어떤 매혹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요.
우리 앞에 놓여 있는 항들이 있습니다.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는데, 패러다임은 사실 우리말로 번역을 하면 ‘모형’, ‘모델’, ‘틀’ 이런 것이죠. 항들 중에서 반드시 하나를 선택해야 돼요. 그래야지만 비로소 의미가 생깁니다. 항들 중에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나머지 항들을 배제한다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의미를 우리가 갖기 위해서는 나머지 것들을 다 사실은 배제시켜야 되는 거예요. 그것이 갈등을 유발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롤랑 바르트는 중립이라는 말을 무관심이 아니라 바로 패러다임을 좌절시키는 어떤 자리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그 말은 제가 이야기했듯이 의미가 나타나기 전의 자리, 무관심의 자리가 아니죠. 뭔가 굉장히 불같이 뜨거운 매혹의 자리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파악되지는 않지만 처음 봐서 굉장히 낯설다, 그런데 매혹적이다,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이 상태를 바로 ‘시적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지금의 청소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A 청소년기라는 것이 가장 예민하고 순수하고 감성적인 시기잖아요. 뭔가 들어오면 굉장히 강하게 들어오고 또 강하게 반응하는 그런 시기라고 생각을 합니다. 반드시 시는 아니더라도 자기가 원하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것, 자기를 감명시키는 어떤 것이 있다면 과감하게 그것으로 뛰어 들어라, 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청소년기가 다시 오지는 않거든요. 물론 입시 준비를 해야 되죠. 제가 아까 이야기했듯이 저는 입시 준비를 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공부보다도 시가 더 즐겁고 재미있었기 때문에 시를 모작하는 일을 했는데, 돌이켜 생각하면 그것이 제가 신인이 되는 길에 조금 도움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러니까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반드시 자기에게 다가오는 어떤 것이 있다면 용기 있게 그것에 뛰어들어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라, 라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Q 시란 무엇인가요?
A 모든 개체들 혹은 어떤 사물들을 반짝이게 하는 어떤 윤기, 그게 시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윤기는 사실 제 속에서도 우러나서 윤기가 나기도 하지만, 어떤 사물들을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게 됐을 때, 뭔가 보듬고 감싸주고 애정을 가졌을 때 윤기가 생기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물건도 제 관심 밖에, 책상 위에 던져놓으면 먼지가 쌓이고 점점 광택이 사라지죠. 그렇지만 광택이 나지 않던 것도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고 보듬고 쓰다듬고 하면 거기서 윤기 같은 게 생기는 거라고 생각해요. 시가 섬세하다고 하면서 그중에 ‘이타성’이나 ‘부드러움’ 같은 게 있다고 얘기했는데요, 이타성하고 관련되는 것이 아닐까요. 얼핏 보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고 하는 그런 행위를 동반하는 관심. 거기서 윤기, 광택이 생기는 것이고 시라는 건 바로 그런 게 아닌가. 마주치는 어떤 것들이라도 윤기 나게 하는 그런 힘이 시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채호기_시인
1988년 《창작과비평》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를 지냈다. 문학과지성사 대표를 역임했으며, 2007년 올해의출판인상을 받았다. 시집으로는 《지독한 사랑》 《슬픈 게이》 《밤의 공중전화》 《수련》 《손가락이 뜨겁다》 《레슬링 질 수밖에 없는》 《검은 사슴은 이렇게 말했을 거다》 《줄무늬 비닐 커튼》이 있고, 산문집 《그리되, 그리지 않은 것 같은,》 《주고, 받다》(공저)가 있다. 김수영문학상, 현대시작품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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