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여행 중 리스본에서 지내는 동안 성 나자로 도서관을 자주 방문했다. 성 나자로 도서관은 리스본에 있는 작은 도서관으로 오전 11시에 문을 연다. 늦게 일어나는 사람으로서 왠지 친근했다. 숙소에서 도서관까지 걸어서 약 30분이다. 하지만 언덕이 많아서 더 오래 걸린다. 한 시간이 넘게 걸릴 때도 있는데 언덕 때문은 아니다. 가는 길에 딴 길로 새기 때문이다. 하루는 가는 길에 이름 모를 성당에 들렀다. 매일 지나치던 성당이지만 늘 문이 닫혀 있어서 들어갈 수 없었는데 그날은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안으로 들어갔을 때 한 노파가 다른 쪽에 있는 문과 씨름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잠긴 문이었다. 나는 커다란 문을 몸으로 미는 노파에게 다가가 “나가는 문은 저쪽에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는데 모르는 언어여서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니 “나는 밖으로 나가려는 게 아니라오”라고 말한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는 어디로 가고 싶었던 걸까?
성당 내부에는 가로로 긴 나무의자가 줄지어 놓였는데 모두 비어 있어서 함부로 앉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의자를 지나치고, 지나치고, 지나치며 화려한 벽을 구경했다. 벽면은 정교한 조각과 장식으로 가득했다. 그중에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투명한 관 속에 안치된 예수였다. 밖에서도 볼 수 있도록 관의 모든 면이 투명했고 작은 조명이 달려 있어 내부가 환했다. 바닥에는 얇은 천과 베개가 놓였고 예수는 베개에 머리를 대고 누워 있었다. 관 속에 누운 예수상은 다른 성당에서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이 조각상은 조금 달랐다.
다른 성당에서 본 예수는 베개에 머리를 대고 편안히 잠든 모습이라면 이 성당에서 본 예수는 베개에서 머리를 살짝 띄웠고 두 팔도 들려 있었다. 예수는 무릎을 살짝 접어 발뒤꿈치와 엉덩이만 바닥에 대고 나머지 부분은 힘을 주어 바닥에서 떼어놓았다. ‘베개에 머리 붙이지 않고 누워 있기 자세’라고 할까. 예수는 관 속에서도 근력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딘가 감동적인 구석이 있어 오래 바라보았다. 관이 바닥에 놓여 있어서 예수를 자세히 보려면 허리를 굽히거나 쪼그려 앉아야 했다.
한참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일어나 성당 의자에 앉았다. 노트를 꺼내 메모를 끼적이는데 종이 위에 빨간 점이 생겨났다. 뒤돌아보니 성당지기가 멀리서 내 노트에 레이저를 쏘고 있었다. 나가라는 뜻이었다. 알아듣기 힘든 언어로 무슨 말을 하는데 손짓을 보니 ‘끝났어’라는 뜻인 듯했다. 아직 11시도 되지 않았는데 문을 닫는다고? 게다가 왜 레이저를 쏘는 거지? 의아해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바글거리던 사람들은 온데간데없고, 커다란 문과 씨름하던 노파도 보이지 않았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나는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성당지기는 내가 나가자 초록 철문을 닫았다. 성당 문이 너무 커서 자물쇠의 구멍도 그만큼 컸다. 성당에서 마지막으로 나간 덕에, 성당지기가 손에 쥔 아주 아주 큰 금색 열쇠를 볼 수 있었다.
성당에서 쫓겨나 약간 울적한 채로 걸었다. 그리고 도서관에 가서 온몸에 힘을 준 채 관 속에 누워 있던 예수에 대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에 재미난 풍경을 많이 보았다. 가는 길은 멀수록 좋다. 그만큼 글감을 주울 수 있으니까. 도서관에 가면, 오는 길에 본 것들에 관해 끼적인다. 그리고 재미난 것들을 관찰하느라 도서관에 늦게 도착한 나를 조금 예뻐해준다.
그러나 성 나자로 도서관에서 내가 가장 많이 쓴 이야기는 이 도서관에 관한 이야기였다. 성 나자로 도서관에는 아름다운 방이 있다. 그 방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이런 모습이다.
문보영 시인이 그린 성 나자로 도서관의 오각형 방 조감도(좌) / 성 나자로 도서관 오각형 방 내부 사진(우) ⓒ 문보영
다섯 개의 긴 책상이 오각형을 이루며 붙어 있고, 중앙에는 원형 테이블이 있다. 그 위에는 뜬금없이 지구본이 있다. 오각형의 중심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책상 사이에 틈이 벌어졌다. 오각형의 중심인 원형 테이블에는 붉은 티셔츠를 입은 남자가 앉아 책을 읽고 있었는데, 시력이 안 좋은지 그는 책을 눈에 거의 갖다 댄 채 읽었다. 이 도서관을 주기적으로 방문하면서 중앙 테이블은 암묵적으로 그의 전용 테이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지만 아무도 선뜻 오각형의 중심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대부분은 오각형을 이루는 긴 책상이나 창가 좌석을 이용했다.
나도 긴 책상에 앉아 작업했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원형 테이블로 시선이 갔다. 붉은 티셔츠의 사내는 과일 몇 알과 알 수 없는 물체가 들어 있는 비닐봉지를 들고 도서관에 왔고, 매일 똑같은 책을 읽었으며 입은 옷도 똑같았다. 언제나 멀티탭을 사용했고(도서관에서 빌린 것인지 본인 것인지는 모르겠다) 비닐봉지 안에 든 검은색 전자 기계(뭔지 모름)와 휴대폰을 종일 충전했다. 그는 종일 꼼짝하지 않고 그 자리에 있었는데, 하루는 그가 의자에서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어떤 사람이 스탠드를 켜지 못해 콘센트를 찾고 있을 때 콘센트의 위치를 알려준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그는 오각형의 내부에서 벗어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내가 이 도서관에 머무는 시간은 두세 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리스본을 떠나는 날까지도 그가 오각형 바깥으로 나가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이 독특한 방에 대해 조금 더 묘사하고 싶다. 이 방은 이층으로 되어 있고 구석의 나선형 나무 계단을 통해 이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 이층에는 기대서 일층을 내려다볼 수 있는 난간이 있고, 벽은 모두 책장이다. 나는 종종 이층으로 올라가 일층을 내려다보곤 했다. 처음 이층에 올라간 것은 누군가의 그림을 훔쳐보기 위해서였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이 도서관에 오는 사람들에 관해 글을 썼다. 사람을 구경하기에 좋은 구조였기 때문이다.
하루는 맞은편에 앉은 사람이 천 두루마리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갈색 형광펜의 넓적한 부분으로 같은 선을 반복적으로 그었다. 그가 그리는 그림이 궁금해서 이층 난간으로 올라가 몰래 그림을 훔쳐봤다. 그러나 무슨 그림인지 알 수 없었다. 동굴 벽화 같았다고 할까. 그는 그림의 배경을 칠하고 있었다. 그리고 중앙 테이블에 지구본이 놓여 있다는 것도 이층에서 일층을 내려다보며 알았다. 정작 눈앞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사물이 이층에 올라가면 더 잘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붉은 티셔츠의 사내가 어떤 책을 읽는지, 그가 충전하고 있는 검은 물체가 무엇인지는 알아낼 수 없었다.
나는 이층의 좁은 난간을 걸으며 유리 전시장 안에 꽂혀 있는 읽을 수 없는 책을 구경했다. 모두 포르투갈어로 된 서적이어서 한 문장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사실이 왠지 위안이 되었다. 읽을 수 없는 책과 읽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일기를 쓰고, 세상을 더듬거리는 것이 성 나자로 도서관이 나에게 준 위로였다.
문보영_시인
시인. 201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2017년 시집 《책기둥》으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유튜브 채널 ‘어느 시인의 브이로그’를 운영 중이며 시와 소설, 일기를 일반 우편으로 배송하는 일인 문예지 ‘오만가지 문보영’을 발행한다. 손으로 쓴 일기를 독자에게 우편으로 발송하는 ‘일기 딜리버리’도 운영하고 있다. 시집으로 《책기둥》 《배틀그라운드》, 산문집으로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앤솔로지 《페이지스 6집-언젠가 우리 다시》 등이 있다. 관심사는 다른 나라의 도서관 방문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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