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츠바라 타모츠 감독의 <피폭소와 살다>(2016)는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사고 지역에서 살아남은 소들과 그들을 돌보는 사람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필름이다. 도쿄전력의 핵발전소가 있던 사고 지역은 쌀농사와 목축업이 이어지던 풍요로운 땅이었지만, 지금은 방사능으로 뒤덮인 폐허가 되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목축업을 하던 몇몇 농부들은 자신의 소들에게 건초를 먹이기 위해 정기적으로 피폭 지역을 방문한다. 대대로 소를 키워서 생계를 꾸려온 농부들에게 피폭된 소들은 더 이상 생계의 자원이 되어주지 못하고, 일본 정부는 이 소들을 살처분하고 다른 곳에서 목장을 하라고 회유와 협박을 반복한다. 하지만 농부들은 피폭된 소들을 돌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 다큐는 가축과 사람의 관계에서 어떤 이야기가 망각되어왔는지를 가르쳐주는 것 같다. 가축을 야생에서 끌려나온 종신형의 죄수로 생각한다면 이 농부들의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다. 농부들은 조상 대대로 키워온 소 덕분에 자식들을 키우고 어느 정도의 풍요를 누릴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소는 고기가 되기 위해 팔려나갔을 테지만 그들에게 소는 단지 생계의 자원으로 환원되지 않았던 것 같다. 농부들은 피폭된 소들이 자연사할 때까지 어떻게든 돌봐주려고 했다. 그들에게 소는 함께 목축업을 일구어온 파트너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의 관계는 평등하지 않고, 도구적인 관계가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소와 사람들 사이에 일방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의존과 돌봄의 관계가 이어져왔다는 것이 망각되어서는 안 된다.
이들 소와 사람은 ‘반려종’이다. 도나 해러웨이는 《해러웨이 선언문》에서 ‘빵을 함께 먹다’는 뜻의 라틴어 cum panis를 어원으로 가진 companion을 생물학적 종을 가리키는 말에 이어 붙여서 ‘반려종’이라는 용어를 제안한다. 해러웨이의 반려종에는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의 공생발생 이론이 중요하게 참조되는데, 그의 유명한 공생발생 가설의 줄거리는 이렇다; 원시지구에서 고세균이 박테리아를 잡아먹었지만 소화를 시키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겼다. 이 난감한 소화불량 때문에 고세균과 박테리아는 서로의 신체를 이용하면서 불편한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고, 결국 진핵세포로 진화하게 되었다. 세포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가 공생발생의 증거로 인정되고 있는데, 이들은 세포의 핵과는 전혀 다른 유전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굴리스는 공생발생 가설을 통해 모든 생물은 본질적으로 친척(kin)이라고 주장한다. 친척은 통상 방계 혈족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마굴리스에 따르면 친척은 혈족에 우선한다. 섹스는 혈족을 만들지만 먹기는 친척을 만들고, 우선은 먹어야 섹스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목축이라는 동류의 일로 묶여 살아온 소와 사람은 서로의 살과 노동을 먹어온 반려친척이다. 이들 반려친척은 긴 진화의 시간과 역사적인 시간을 거치며 서로에게 단단히 옭아매져 있어서 여간해서는 그 관계가 풀리지 않는다. 또한 이들은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세대시간을 거치면서 서로에게 중요한 자들이 된다. 이 시간들은 그들의 신체와 일상의 일로 기억되고 있다. 이 기억들이 반려친척의 친족애(kinship)를 육성한다. 현저하게 비대칭적으로 보이는 가축과 사람의 관계가 파국에 이르지 않고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기계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인간-기계로서
기계와 인간의 관계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기계를 만든 것은 인간이지만 이제 기계 없는 인간의 삶을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우리는 사이보그로 산다. 일군의 미래학자들은 기계를 노예처럼 부리고 질병과 노화에서 벗어난 포스트휴먼을 전망하지만 그런 미래는 불가능하다. 인간의 풍요를 위해서 다른 모든 것들이 노예가 되는 세상은 지속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기계조차도 잘 돌봐주지 않으면 고장을 일으키고 이미 사이보그인 우리에게 그것은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 기계는 더 이상 도구가 아니고 우리 자신이다. 그래서 해러웨이는 사이보그를 가장 어린 반려친척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지금, 모든 종류의 반려친척 관계는 파탄 지경에 이르고 있다. 살아남은 소를 살처분할 것을 강권하는 일본 정부에게 소는 목축경제의 도구일 뿐이고, 날로 성장하는 거대 식육산업에게 소는 이익을 창출하는 원재료에 불과하다. 해마다 죽이기 위해 살려지는 가축들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그들이 내뿜는 메탄가스는 지구의 온도를 급속도로 올리는 중이다. 지구 곳곳에서 발생하는 인수 공통 감염병도 거대 식육산업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더 많은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숲이 사료용 농장이나 목장으로 빠르게 변하는 바람에 오랫동안 터 잡고 살았던 박쥐들이 살 곳을 잃게 된 것이 큰 이유다. 숙주가 취약해지면 기생 생물은 살기 위해 다른 숙주로 갈아탄다. 그들의 다음 숙주는 숲까지 밀고 들어온 농장의 가축이나 야생동물이었고, 이를 통한 감염병의 대유행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세대시간이 지나치게 짧아진 기계와 인간의 관계도 가축과 인간의 관계와 다르지 않다. 폐기된 전자기기들이 제3세계의 쓰레기장을 가득 메워 땅과 물을 오염시키고 기계를 만드는 공장 설비의 건설과 폐기는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방출한다. 반려친척들과 만들어온 세계는 전 지구를 하나로 묶는 상품경제에 의해 빠르게 붕괴되고 있다. 친족애를 잊어버리고 세계를 잃어버린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땅에 붙박인 채로 서로를 돌보며
친족애는 상대를 존중하고 예의바르게 대하는 것으로부터 나오는데, 여기서 예의바름(polite)이란 매너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political)이다. 기후 위기에 대한 사유를 담은 《자연계약》에서 미셸 세르는 자신이 말하는 자연계약이란 항해하는 선박에서 하나의 불문율로 통용되는 선원 간의 예의의 조약에 상응한다고 했다. 그것은 자신들의 취약함에 속수무책인 선원들 사이의 불가침 조약, 신성한 예의바름이라는 것이다. 선상 난간 바깥은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대양이 버티고 있기에 선원들이 서로 싸우다간 모두 바다에 빠져 죽고 만다. 선원들에게 사회성이란 선택 사항이 아니다.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맺어온 비인간과 인간 또한 선원들의 처지와 마찬가지다. 살기 위해 서로를 돌보고 예의바르게 굴어야 한다.
농부들이 피폭을 무릅쓰고 사고 지역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은 선조들로부터 계승되어온 반려친척에 대한 예의바름의 불문율 때문이었을 것이다. 비록 많은 농부들이 당장의 생계 압박과 더 이상 어찌해볼 수 없는 이유들 때문에 정부의 회유에 굴복하고 말았지만, 그들이 어렸을 적부터 보고 듣고 겪어온 소와 사람의 관계는 상품관계나 도구적 관계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이 불문율을 기억하는 이들이 점점 사라지고 우리에게 남은 이야기는 영웅적 인간이 야생의 동물을 길들여 문명의 재료로 삼았다는 정복 서사뿐이다. 이 서사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취약한 자들이 아니고, 자연을 지배할 수 있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그러나 지난 2년여 동안 우리가 겪고 있는 감염병은 그것이 얼마나 큰 착각인지를 여실하게 보여주었다. 코로나19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각국에서 취한 봉쇄 정책은 세르가 말했던 선상의 난간을 경험하게 했다. 난간 바깥은 목숨을 부지할 수 없는 사나운 바다가 도사리고 있다. 브뤼노 라투르의 말처럼 우리는 지구에 봉쇄된 자들이다. 미국의 어떤 기업인이 화성을 개척하겠다고 떠들어대고 있지만, 지구에 봉쇄된 우리는 ‘땅에 붙박인 자들’이다. 땅에 붙박인 자들인 우리, 세계를 잃어버린 우리는 반려친척들과 세계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다큐멘터리 <피폭소와 살다>는 이제는 거의 잊힌 반려친척의 이야기다. 반려친척들이 어떻게 서로를 돌보아왔는지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지구의 다른 비인간들과 다시 멤버가 될 수 없다. 기억하기(remember)는 다시 멤버가 되는(re-member) 것이다. 지구에 봉쇄된 우리의 운명이 바로 여기에 달려 있다.
최유미_인문학자
수유너머 104 연구원. KAIST 화학과에서 이론 물리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20년간 IT회사에서 일했다. 지금은 수유너머 104에서 현대철학, 과학학,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강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해러웨이, 공-산의 사유》 《감응의 유물론과 예술》(공저)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 《트러블과 함께하기》 《종과 종이 만날 때》 《원자폭탄》(공동번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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