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책과 새 책 사이에서 나는 종이와 잉크 냄새, 소리와 습기를 빨아들이는 서가들, 책의 변색을 방지하면서도 열람실 방문객에게 기분 좋은 빛을 전달하려는 햇빛과 인공조명, 책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무게감, 한순간 지구 중력을 떠난 듯한 공간감, 책을 읽는 사이 외부의 시간과 단절되어 시간 감각을 상실하면서 느끼는 나라는 존재의 희미함.
도서관을 자주 가는 사람들은 위 문장이 문학적 수사가 아니라 실제라는 것에 공감할 것이다. 도서관이 주는 공간감은 여느 공간이 주는 공간감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특별하다. 광활한 자연을 마주할 때 인간은 자연의 경이로움 앞에서 초라한 나를 만나게 된다. 이때의 초라하면서도 텅 빈 마음은 가슴을 벅차게 만들면서 동시에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도서관은 자연의 광활한 풍경과 유사한, 인류가 만든 광활한 지적 풍경이다.
이런 이유에서 ‘도서관’이 책 중심의 기능적인 단어라면, ‘서림(書林)’은 좀 더 유기적이고 도서관의 분위기를 실감나게 전달하는 것 같다. 인류 문명의 축적인 도서관에서 느끼는 초라한 마음은 자만했던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인류의 지혜를 향한 상상과 배움의 욕망으로 가득한 호기심 많은 아이로 만든다.
핸드폰 안에 담긴 정보의 양은 도서관의 방대한 정보를 초라하게 보이게도 하지만, 핸드폰 속 토막 난 정보들은 짜깁기만 난무하는 세상을 가속화하기도 한다. 전문 분야로 조금이라도 들어서보면 다시 도서관을, 책을 찾게 된다. 도서관 존재의 위기와 책의 위기는 사실 디지털과 변화하는 사회에 대한 적절한 응답을 찾는 과정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점토판에서부터 두루마리, 종이, 필사본, 인쇄, 판형, 디지털 등 인류의 지혜를 담는 책의 형식은 인류에게 지식의 접촉 기회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일관적으로 진행되었다. 살아 있는 것만 변화할 수 있다. 살아 있는 도서관은 변화와 충돌을 적극적으로 환영하고 새로우면서도 동시에 과거의 어떤 건축 방식을 추앙하는 형식으로 재현되고 있다.
책이 주는 경외를 가장 아름답게 나타낸 미국 예일대학교의 바이네케 고문서도서관
새로운 방식의 다양한 도서관들이 시도되고 있는 것 같지만, 건축가의 입장에서 보면 도서관 건축은 몇 가지 기본 구성 요소를 어떤 비중으로 공간에서 다룰 것인지로 귀결되는 것 같다. 그중 첫 번째 구성 요소가 책을 대하는 태도다. 책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물성의 가치는 오늘날 엄청나게 희석되었다. 하지만 도서관의 분위기는 오랜 세월 퇴적된 지층처럼 켜켜이 쌓은 책 자체에서부터 나온다.
근대 이전의 수많은 아름다운 도서관을 제외하고 근현대 도서관 중 개인적으로 책이 주는 경외를 건축적으로 가장 아름답게 나타낸 현대 도서관을 꼽는다면, 건축가 고든 번샤프트(Gordon Bunshaft)가 설계한 미국 예일대학교의 바이네케 고문서도서관(1960~1963건축)이다. 구텐베르크가 인쇄한 《42행성서》 판본, 코페르니쿠스의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주석본, 갈릴레이의 《별의 메신저》초판본 등을 바이네케 고문서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이는 왜 예일대학이 세계적인 대학일 수밖에 없는지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바이네케 도서관은 인공적으로 온습도를 유지하는 밀폐형 서고 공간을 중심으로 전시 공간과 열람실, 사무실이 함께 있는 프로그램을 건축 설계의 지침으로 삼았다. 이곳을 설계한 건축가 번샤프트는 우선 6층 규모의 거대한 밀폐형 유리 서고를 도서관의 중심에 두었다. 그리고 직접적인 채광을 피하기 위해 도서관 전체 외벽으로 빛이 스며드는 대리석 오닉스를 사용해 최소한의 실내 조도를 확보하면서도 햇빛에 의한 책의 손상을 막았다. 신전과 같은 유리 서가와 외벽 사이 공간은 열람과 전시, 동선으로 사용된다.
건물 1층은 벽면 없이 건물 네 모서리에만 기둥을 두어 건물이 지면에서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필로티 구조로 만들었다. 상부에는 유리창 없이 한 변의 길이가 약 3미터 정도 되는 3센티미터 두께의 흰색 정사각형 대리석을 가로 15칸, 세로 5칸의 단순한 격자로 디자인했다. 외부에서는 대리석이 흰색으로 보이지만, 빛이 투과된 내부에서는 시간에 따라 다양한 색으로 변한다. 바이네케 도서관은 고문서 보관과 책의 적층이라는 기본을 가장 직접적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시적으로 건축했고 이것은 도서관의 신전을 떠오르게 한다.
서가가 도서관 구성의 중심이 된 일본 무사시노 예술대학 도서관
도서관 건축의 두 번째 구성 요소는 서가다. ‘가구’는 한자로 ‘집 가’(家)에 ‘구체화 할 구’(具)를 사용한다. 즉, 집을 구체화하는 것이 ‘가구’이고 ‘서가’는 도서관 건축을 구체화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 된다. 개인적으로 한국 국공립도서관에서 아쉬운 점은 서가다. 세계 유명 도서관은 서가와 건축 사이, 그 관계의 아름다움이 도서관 건축의 핵심 요소다. 건축과 가구는 불가분의 관계이고 도서관 건축은 더욱 더 그러하다.
역사적으로 벽면서가시스템이 처음 만들어진 도서관은 1609년에 문을 연 이탈리아 밀라노의 암브로시아나 도서관이다. 근대의 시작을 언제로 보는가는 각 분야마다 다를 수 있지만 17세기는 여러모로 현재 도서관의 출발점이 된다. 16세기를 거치는 동안 책값이 크게 떨어졌고, 17세기가 되면서 책 판형의 변화와 함께 책등에 제목과 글이 들어가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책과 도서관의 보편화는 근대를 바라보는 중요한 축이다.
무사시노 예술대학 도서관의 서가 모습
서가가 도서관 구성의 중심이 된 가장 독특한 현대 도서관으로는 일본 건축가 소우 후지모토가 2010년에 만든 무사시노 예술대학 도서관이 떠오른다. 후지모토는 숲을 거닐 때 만날 수 있는 ‘찾기’와 ‘발견하기’라는 경험을 도서관으로 옮겨왔다. 건축 구조이면서 서가 역할을 하는 9미터 높이의 서가 벽을 나선형으로 배치하고 외벽은 서가 벽이 그대로 드러나도록 투명한 유리로 디자인했다. 나선형 공간 구조로 원하는 책을 빠르게 찾을 수도 있고 동시에 우연한 발견을 가능하게 도와준다.
층별 배치를 살펴보면 지하 1층은 10만 권의 도서를 저장하는 저장고의 역할을 하고 1층은 연구 공간으로 개방형 열람실, 2층은 스터디 공간으로 구성했다.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계단식 강당은 파격적인 도서관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도서관 건축이 갖추어야 할 기본 연구가 충실하게 이루어졌음을 느낄 수 있다. 무사시노 예술대학 도서관의 서가는 일곱 칸까지만 사용하고 나머지 상부는 비워져 있다. 비움으로 채움의 가능성을 가지도록 하고 동시에 서가를 이용한 공간 구축이라는 건축 개념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지역과 사람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시애틀중앙도서관
도서관 건축의 마지막 세 번째 구성 요소는 사람과의 관계다. 도서관은 역사적으로 언제나 지역의 상징적 중심축이 되어왔다. 공원과 도서관은 도시에서 가장 민주적인 공간이다. 그렇기에 그 도시의 정책을 가장 빨리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공원과 도서관을 방문하는 것이다. 현대 도서관에서 지역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대표적인 도서관 중 하나가 건축가 램 쿨하스가 설계한 시애틀중앙도서관이다.
시애틀중앙도서관의 목표는 ‘모두를 위한 도서관’이다. 도서관의 외관은 다섯 개의 상자를 지그재그로 쌓은 모양이고, 건물의 입면은 마치 각각의 상자를 투명한 천으로 덮어씌운 것 같은 유리입면으로 마감되어 있다. 각 상자 모듈 중 가장 높은 곳의 모듈에 오피스와 강당이 있다. 그 아래 6~9층의 모듈은 도서 보관을 위한 공간이다. 4층과 5층은 컴퓨터실과 미팅룸으로 구성되었고 3층에는 이 도서관의 가장 핵심적인 공간인 열람실이 있다. 이곳 열람실의 이름은 ‘리빙룸’이다. 도서관을 도시의 리빙룸으로 여기는 시애틀중앙도서관의 방향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또 음악 연습실, 공연 연습실, 작가의 방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도시의 활력을 불어넣어 시애틀중앙도서관은 시애틀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미래가 바꾸는 도서관, 도서관이 바꾸는 미래
오프라인 공간이 담당했던 많은 것들을 온라인이 흡수하면서 오프라인 공간은 ‘공간의 경험’이라는 측면이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 특히 스토리, 콘텐츠와 공간의 창의적 결합은 이제 거의 모든 공간에서 필수적인 것이 되었으며, 책이 있는 공간이 주는 특별한 공간감은 카페, 상점, 백화점, 전시관 등의 공간에 일부는 창의적으로 그리고 일부는 상투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17세기 신문과 잡지가 등장하고 오스만 제국의 커피하우스가 유럽으로 유행하면서 커피하우스는 정치, 사회, 경제, 문학 등 다양한 분야를 토론하는 열린 토론장이 되었다. 커피하우스와 살롱은 대중의 독서토론 문화를 만들었고 이런 문화는 근대사회의 촉발제가 되었다.
17세기 카페와 살롱은 ‘생활로 녹아든 도서관’이다. 역사적으로 도서관은 종교와 왕권 강화에도 큰 역할을 했지만 동시에 대중의 독서와 토론으로 근대의 형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다. 정형적인 도서관에서 벗어나 일상 공간과 책의 만남을 도서관이라고 한다면 도서관은 무궁무진한 형태로 진화할 수 있다. 인테리어 소품 취급을 받는 책은 사물과 공간과 사람을 적절히 연결하지 못한 결과다.
캠핑 용품을 파는 공간에 캠핑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책이 함께 있다면 소비와 생활 그리고 책이 녹아들어 삶의 깊이를 더할 수 있다. 식당에 음식의 역사와 다양한 지역의 요리책이 함께 있다면 그 식당은 다른 식당과 차별화된 깊이를 더할 수 있다. 만일 도서관에서 피아노 교실이 열린다면 피아노만 가르치는 공간과는 전혀 다른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
도서관은 책과 서가, 사람이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만드는 지형도다. 이 관계의 지형도를 잘 따라가면 유연하게 도서관에서 필요로 한 사회적 접근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양극화 심화와 평등 문제가 사회 곳곳에서 감지된다. 지성은 나를 이해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는 곳에서 생겨난다. 즉각적인 해결책과 효과가 우선시되는 사회에서 도서관이 가지는 강력한 치유의 힘이 있다. 미래는 늘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지만 미래는 도서관을 바꿀 것이고 도서관 또한 미래를 바꿀 수 있다.
김대균_건축가, 착착스튜디오 건축사무소 대표
건축을 바탕으로 공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콘텐츠와 협업하여 인문학적 가치와 보편타당한 섬세함을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건축가이다. 건축사무소 ‘착착스튜디오’ 대표로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전문사 이론과정을 졸업했으며 현재 파주타이포그라피 배곳(PATI)에 출강 중이다. 대표적인 프로젝트로는 대흥사 유선여관, 하우스비전 재배의 집, 풍년빌라, 명동성당 역사관, 이상의 집 리노베이션 등이 있다.
우크라이나의 도서관을 다시 짓는 비정부기구우크라이나 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2월부터 시작된 전쟁 때문에 우크라이나의 도서관 155개가 파괴됐고, 298개의 도서관이 훼손됐다고 한다. 이에 세계기념물기금(World Monuments Fund)과 같은 비정부기구(NGO)들이 복구 작업에 나섰다. 세계기념물기금은 우크라이나 체르니히우(Chernihiv) 지역의
성인 ADHD에는 완쾌가 없다고?처음 ADHD 진단을 받았을 땐 내 인생이 드디어 영원한 불행의 터널로 들어선 것 같았다. 성인 ADHD에는 완쾌가 없다는 사실이 나를 끝없이 절망스럽게 만들었다. 평생 약을 먹어도 낫질 않는다니, 노력의 노력을 거듭해도 결국은 ADHD일 뿐이라니. 내 이야기가 아닐 땐 대수롭지 않던 네 개의 알파벳이 순식간에 멍에가 되어
일본에서의 새로운 한류 ‘한국문학’2016년 일본 문학계를 들썩이게 한 뉴스가 있었다. 번역가 현재훈과 사이토 마리코가 공역한 박민규의 《카스테라》(도서출판 크레인)가 제1회 일본번역대상을 수상한 것이다. 일본번역대상은 12월부터 이듬해 12월 말까지 13개월 간 일본어로 번역된 책 중에 뛰어난 번역서에 주어지는 상이다. 후보 선정 과정에서 독자 추천을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