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옆]은 각 지역의 여러 도서관을 도서관 안에서가 아니라 도서관 옆으로부터 시작해 여행하듯 탐방하는 코너이다.
율목도서관의 고양이 ⓒ강인송
도서관 이름을 들을 때마다 입안에 침이 고이는 이유는
‘‘강’-간김에.’ 이 요상한 글자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게 지어준 별명 중 하나다. 어디 간 김에 자꾸 뭘 더 하는 걸 좋아하는 까닭이다. 도서관에 가면 그냥 책만 냅다 읽다 올 것이지, 간 김에 그 옆 산책로도 걸으려 하고, 그 근처 마을 고양이들 동그란 입도 가만히 구경하려 하고, 그 옆 시장에 있는 먹을거리도 좀 사려 한다. 그러니 딱! 한 가지 하러 어디를 가는 것은 마음먹기가 쉽지 않다. 가는 김에 덩달아 할 수 있는 게 풍성하지 않으면 좀처럼 자리에서 일어나지지 않는다.
그런 내가 인천 중구에 위치한 율목도서관에 간다. 그곳에는 도서관이 있고, 어린이도서관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살던 적산가옥을 그대로 보존해놓은 도서관, 그 건물 뒤 산책로 옆으로 또 다른 산책길이 이어져 있다. 그곳에는 곳곳마다 곁을 주지 않으면서 멀리 도망가지도 않는 무던한 성정의 마을 고양이들이 있다. 조용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멀지 않은 곳에 신포국제시장이 있다. 시장에는 닭강정이나 만두, 꽈배기도 있지만 무엇보다 동글동글, 속이 휑한 공갈빵이 있다. 나는 간 김에 기꺼운 마음으로, 할 게 많은 율목도서관으로 향한다. 도서관 이름을 들을 때마다 입안에 침이 고이는 이유는, 그래서다.
좋은 것을 더 선명하고도 풍부하게 만드는 것들이 그 안에
공갈빵을 처음 만난 건 어느 주말이었다. 도서관에 들렀다가 근처 신포국제시장을 구경하던 중이었다. 웬 가게 앞에 유독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가만 보니 그 집 메뉴는 고작 세 개였다. 만두랑, 찐빵이랑, 공갈빵. 잉? 공갈빵? 만두랑 찐빵은 그렇다 치고 공갈빵은 잘 모르는 것이었다. 가게 앞 플라스틱 상자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게 공갈빵인가 보았다. 줄 선 사람들 모두 만두랑 찐빵 말고 그것만 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동글동글 공갈빵. 한 개씩 옆구리에 끼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쑥 솟아났다.
가게 안에서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직원 분이 보였다. 그는 멈추지 않고 자꾸만 뭘 했다. 그러니 그깟 줄, 금방 빠질 줄 알았다. 그때까지는 공갈빵을 한 번에 열 개씩만 굽는다는 걸 몰랐다. 쌓여 있던 빵들이 맞춤하게 식을 때까지 7분을 기다려야 하는 줄도 몰랐다. 그러니 앞으로 등장할 빵들마저 꼬박 7분씩 기다려주어야 한다는 것조차 당연히 몰랐다.
규칙을 기다리며 찍은 공갈빵(좌), 기다리며 그려넣은 공갈빵의 표정(우) ⓒ강인송
한참 서 있다가 공갈빵의 규칙을 깨닫고 난 다음에는 덩달아 오기가 생겼다. 앞선 사람들이 느릿느릿 한두 개씩 가져가는 것을 보며 더욱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사장님이 파란 상자에 공갈빵을 내올 때마다 몇 명이나 가져갈 수 있는지 빠르게 헤아려보았다. 좀처럼 내 차례가 오지 않았다. 시간이 더디게 갔다. 공갈빵을 같이 기다려주던 사람이 있었으니 망정이지, 혼자서는 어려울 뻔했다.
공갈빵 사진을 찍고, 거기에 눈 코 입을 그려 이름을 붙여주고, 녀석들을 데려갈 사람들의 성격과 성정을 상상하면서 시간을 간신히 견뎠다. 얼마나 맛있기에 그러나, 대체 얼마나 맛있기에. 그 소리를 여러 번 되뇔 즈음이었다. 내부에서 화덕을 살피던 사장님이 이번에는 만두가 잘 익었나 보려고 가게 앞 커다란 찜통의 뚜껑을 열어젖혔다. 희고 따뜻한 김 따라 만두 속 고기향이 얼굴에 훅 끼쳤다. 그때였다.
이거 드슈. 사장님이 대뜸 내게 만두 하나를 내밀었다. 그러면서 내 손바닥을 접시처럼 빤히 내려다보았다. 거절할 틈이 없었다. 코로나19 이후로 야외에서 뭘 먹어본 적 없는 내가 얼결에 맨손으로 받아든 따끈따끈한 만두였다. 사장님이 얼른 맛보라고 눈짓했다. 굳이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던 나는 맨손으로 만두를 먹었다. 고기 맛은 향보다 훨씬 진했다. 손가락 끝에 묻은 기름까지 쪼옥 핥아먹는 건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돌아보니 줄 서 있던 사람들 모두 입술과 손가락 끝이 기름에 반질반질해져 있었다. 웃음이 나왔다. 내 몫의 공갈빵이 나온 건 그때였다. 충분히 식히는 시간, 7분을 더 기다린 끝에 공갈빵은 간신히 내게 올 수 있었다. 맨손으로 만두를 먹고 난 다음 얻어낸 공갈빵. 그게 내 첫 공갈빵이었다.
그러니 내가 공갈빵을 좋아하게 된 것은 그저 빵을 깨부술 때의 속 시원함이나 오로지 달콤하고도 바삭함 때문만은 아니다. 공갈빵 속 빈 공간을 채워주는 즐거운 것들이 알록달록 충분한 덕분이다. 좋은 것을 더 선명하고도 풍부하게 만드는 것들이 그 안에 꽉 차 있었다. 율목도서관에서 실컷 책을 읽고 난 다음 산책하는 기분으로 내려가는 길, 돌아볼 때마다 만날 수 있는 중구의 전경이나 우연으로 다시 만나는 마을 고양이들, 맨손으로 만졌던 갓 찐 만두의 촉감, 만두 하나 먹고 얼떨결에 해사해진 줄 선 사람들의 얼굴, 그런 것들이 나를 덩달아 공갈빵까지 좋아하게 만든 게 분명하다.
율목도서관 옆 산책길 ⓒ강인송
물론 읽기 좋은 것부터 몽땅 삼키고 난 다음에
그러니 도서관 가는 김에 하려고 했던 모든 것을 차근차근, 해낸다. 율목도서관 가는 길은 웬만하면 아무도 차를 가지고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빚은 것처럼 꼬불꼬불하고 좁다. 걷는 사람 입장에서는 산책하기에 아주 맞춤하다. 마음껏 책을 읽고, 멀리서 고양이들을 구경한 다음, 도서관의 산책로 따라 뒤로 연결되는 또 다른 산책로를 실컷 걸어본다. 빌린 책으로 뚱뚱해진 가방을 짊어지고 시장으로 간다. 동네 주민들이 분리수거할 때 나는 바스락거리는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 길을, 와사삭 공갈빵의 식감을 생각하며 걷는다.
다행히 오늘은 평일이다. 오래도록 긴 줄을 서지 않아도 되고, 꽤 넉넉히 사 가지고 집에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빵 한가운데를 세게 내리친 다음 먹기 좋은 크기로 와사삭, 부수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며 공갈빵 먹으러 간다. 아, 물론 읽기 좋은 것부터 몽땅 삼키고 난 다음에 말이다. 와사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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