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종영한 SBS 〈영재발굴단〉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기적의 피아노 소년 김두민’이라는 타이틀로 파리 명문 음대에 최연소 합격한 아동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워낙 작정하고 뛰어난 영재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라서 여기까지는 그다지 놀랄 게 없었다. 탁월한 천재성보다 깊은 감동과 여운을 준 것은 바로 두민이의 소소한 일상과 마음을 울리는 말들이었다.
“책을 읽는 것도 연습이고 음악을 듣는 것도 연습이에요.”
연습을 못 하는 시간도 연습만 못 할 뿐이지 음악에 투자하고 싶다는 두민이가 선택한 또 다른 음악 연습은 놀랍게도 독서였다. 두민이는 세계적인 명문 음대인 프랑스 에콜 노르말 드 무지크(Ecole Normale de Musique de Paris)에 아시아 최초, 최연소 6년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그런데 유학을 앞두고 집에 피아노가 없어서, 동네 음악학원의 빈 연습실을 빌려 쓰고 있었다. 두민이는 아이들이 몰려드는 시간이면 황급히 연습실을 빠져나와야 했지만, 어떤 원망이나 한탄도 없었다. 오히려 시간 날 때마다 머리를 식힐 겸 책을 읽는다면서, 피아노 연습을 못 하는 시간이면 곧바로 서점으로 향했다. 당시 만 13세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두민이는 천문학, 역사, 과학, 인문학,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두루 읽고 있었다. 피아노 연습 못지않게 독서 또한 두민이의 중요한 연습 시간이었다.
3년 후, 〈영재발굴단〉에서는 두민이의 소식을 다시 전해주었다. 세계적인 클래스 음반사를 통해 글로벌 앨범을 발매하며 피아니스트로서의 데뷔를 알리기 위해 고국을 찾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독서를 중요하게 여기는 두민이는 책을 재미로 읽는 게 아니라 ‘배우는 느낌’으로 읽는다고 말했다.
“클래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의 정신이나 정서, 사고방식 같은 걸 이해해야 해요. 아무래도 그런 것을 이해하기에 가장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고전문학을 읽고 있어요.”
‘배우는 느낌’이라고 표현한 두민이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가 갔다. 자기가 피아노를 선택한 게 아니라 피아노가 자신을 선택한 것 같다며, “베토벤이 제 몸 안에 들어왔다”라고 표현하는 두민이는 타고난 예술적 감수성을 어떻게 훈련해야 하는지 일찍부터 터득하고 꾸준히 실천하고 있었다.
내면의 힘과 풍부한 감성 기르기
책벌레로 유명한 피아니스트 손열음 씨 역시 작품의 인문학적 배경을 알고 연주하는 것과 모르고 연주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말한다. 기술적인 재능은 타고나는 것과 노력으로 연마하는 것이지만, 견고한 내면의 힘과 풍부한 감성은 꾸준한 독서를 통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손씨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알퐁스 도데의 〈별〉을 읽고 처음으로 ‘문학이란 이렇게 맛있는 거구나’ 하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열한 살의 나이에 문학을 ‘맛’으로 표현할 만큼 손씨는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하고 독서를 즐길 줄 알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하루 열 권의 책을 읽었다는 손씨는 11세 때부터 해외 연주회에 홀로 참가해야 했다. 그 멀고 먼 여행 동안 자신의 곁을 지켜준 친구가 바로 책이었다. 손씨는 수많은 연주 여행으로 여행이 일처럼 다가오기 쉽지만 가만히 앉아 책을 읽으면 독서가 더 진실한 여행처럼 느껴진다면서, 진짜 여행은 독서라고 말한다. 아주 어릴 적부터 연습과 연주를 반복하며 자칫하면 한정된 공간과 사람 속에서 작은 세계관을 가지고 살기 쉬운 손씨에게 독서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다양한 사람들과 교감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스승이 될 수 있었다.
무언의 대화처럼, 관객과 교감하고 소통해야 한다고 말하는 손열음 씨와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은 두민이는 모두 책을 좋아한다. 쉴 틈 없이 연주하고 맹렬하게 연습하는 힘든 시간 속에서 시간을 쪼개어 독서를 즐기는 두 사람의 공통점은 독서를 통해 예술적 감수성을 높일 줄 아는 것이다. 두 예술인이 책을 벗하며 책과 여행하고 책과 대화하며 성장하는 모습은 우리가 어떻게 예술적 감수성을 높이고 독서를 해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독서는 예술적 감수성을 높이는 에너지 충전소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이나 젊은이들에게 독서가 주는 자극과 힘은 대단하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꿈 같은 건 없다면서 산만하게 교실을 빙빙 돌던 아이가 일부러 찾아와 자기 꿈을 속삭일 때, ‘중고등학교 때는 시(詩)를 시험공부를 위해 읽는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스마트폰 대신 시집을 읽는다며 시를 쓰고 싶다고 말하는 장병을 볼 때, 부대에 와서 책을 읽는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는데 독서를 통해 군 생활이 의미 있고 좋아졌다는 소감을 들을 때, 아기와 함께 도서관을 다니면서 함께 책을 읽고 싶다는 미혼모의 미소를 볼 때, 우울증에 시달리며 자신감이 없었는데 독서를 하면서 조금씩 우울증도 나아지고 위로와 용기를 얻는다는 장애인 청년의 이야기를 들을 때, 독서가 일으키는 조용한 변화와 삶의 기적을 수없이 경험하고 있다.
독서는 예술적 감수성을 길러주고, 예술적 감수성은 가장 나다운 나를 표현하고 세상과 소통하고 공감할 힘을 길러준다. 원석 그대로 묻히지 않고 아름다운 빛을 발하도록 이끌어주는 것이다. 저마다 지닌 잠재력과 재능이 원석이라면, 돌덩이처럼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을 갈고 닦아 저만의 빛과 색을 띠게 하는 것이 바로 예술적 감수성이다. 예술적 감수성이 높은 사람들은 자기 느낌에 충실하고 내면에 집중할 줄 안다. 감수성이 높을수록 섬세한 관찰력과 집중력이 강해서 자기 내면의 감정과 감각을 빠르게 파악하고 통찰할 힘과 창의력 또한 강해진다. 독서를 하면서 하고 싶은 것이 떠오르고, 꿈이 생기고, 자신감이 생기는 것도 예술적 감수성이 점점 높아지기 때문이다.
흔히 예술적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예술교육을 강조하기 쉽다. 실제 교육현장에서는 ‘우리 학생들이 예술적 감수성을 토대로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는 능력을 키우는 교육’을 강조하며 예술교육의 확대와 지원을 늘리고 있다. 입시 위주의 교육을 벗어나 학생들의 개성과 창의적 상상력을 키우기 위한 노력은 매우 바람직하다. 그런데 예술적 감수성을 높이려면 그 기반부터 다지는 것이 먼저다. 아무리 좋은 지식과 자원을 쏟아부어도 예술적 감수성을 불러일으킬 내면이 부실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과 같다. 그래서 예술적 감수성이 높아지려면 외부의 자극 이전에 자신의 느낌에 집중하고 내면에 집중하는 힘을 기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함을, 교육을 하면 할수록 실감하게 된다.
며칠 전 만났던 초등학교 교사 한 분이 올해 만난 1학년 아이들과 매일 아침 10분씩 책을 읽는다고 했다. ‘코비드19’로 달라진 교육환경 때문에, 아이들의 문해력이 눈에 띄게 떨어지고 생활 태도도 미숙해서 고민했던 선생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20년 이상 교사 생활을 해왔지만 이렇게 어려웠던 적은 없었다며 걱정하던 선생님의 염려를 ‘아침 독서 10분’이 해결해주었다. 특히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감정을 읽기도 쉽지 않고 말하는 것도 우물거려 소통이 어려웠던 아이들이 책을 낭독하면서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한다.
선생님은 요즘은 속 썩이는 아이를 보면 ‘저 녀석 속에 장난치고 반항하는 내 모습이 있지’ 싶어서 감싸주고 이해하게 된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라면서 무척 뿌듯해하시는 선생님을 보면서, 아이들과 함께 매일 책을 읽는 동안 절로 예술적 감수성이 높아졌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는 예술적 감수성을 높이는 에너지 충전소와 같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에너지를 넉넉히 충전할 수 있다. 어디 멀리 떠나거나 맘 잡고 찾지 않아도 책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다. 홀로 여행을 가거나 방안에서의 독서를 통해 에너지를 충전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뭔가를 할 만한 에너지가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다면, 일단 독서를 통해 에너지부터 충전해보자. 에너지가 든든히 채워지면 에너지를 발산하고 싶어 꿈틀대는 자신을 만나게 될 테니까.
김현미_독서교육 강사
독서교육 강사. 20년 이상을 치유와 성장을 돕는 예술치료를 연구하고 강의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신나게 꿈꾸고 평화롭게 살 수 있을지 고민하며 살 맛 나는 세상을 위해 글도 쓰고 일한다. 쓴 책으로 《만다라 감사일기》(필명 김단예)가 있다. 현재 (통합예술치유연구소)마음에듀 대표, 서울시감정노동종사자권리보호센터 심리치유강사, 한국독서지도연구회협동조합 독서교육 강사로 일하고 있다.
수많은 책들 중에 소수의 책을 선별하는 기준은 솔직히 개인의 취향,취향이 동네책방의 개성을 만든다. 그림책방 곰곰을 한두 줄로 소개하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늘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를 위한 그림책방”이라고 소개한다. 연령대와 상관없이 그림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우리 책방에서 좋아하는 그림책을 발견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사실 처음에는 ‘어른을 위한 그림책방’
1977년 록 밴드 ‘산울림’으로 데뷔하면서 많은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김창완 뮤지션의 전시 〈꽃이라는 것〉(Art Bloom)이 성수 SKV1 빌딩에서 3월부터 5월까지 열리고 있다.“그림이 꽃처럼 보인다면 ‘희망’을 보고 계신거라고” 말하는 김창완의 〈꽃이라는 것〉 연작을 만나본다. 전시 장소 : 성수 SKV1센터 (서울 성
사서가 만나본 MZ세대가 도서관에 바라는 것도서관은 어떻게 다양한 청년들의 커뮤니티가 될 수 있을까 “오니까 재밌네”, 청년층을 끌어오는 색다른 프로그램필자가 지역에서 도서관 밖에서 진행되는 사적인 청년 모임을 기획, 운영하며 참가자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 있었다. “오니까 재밌는데, 오기 전에는 행사에 참여하기가 꺼려졌다.” 혹시 사이비나 수상한 단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