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2학년 아이와 엄마표 영어를 하던 시절, 가장 즐겁고도 가장 힘들었던 것은 도서관 가기였다. 우리집 도서관 원칙은 ‘T-day&3T’였다. 1. Tuesday(화요일), Thursday(목요일), saTurday(토요일)에는 꼭 도서관에 간다. 2. 도서관에 가면 원하는 Treat(간식)을 먹고, 도서관에서 빌린 책 100권을 읽으면 작은 Toy(장난감)를 하나 살 수 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원하는 메뉴로 저녁밥을 Take out(포장)한다. 우리 아이가 책읽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면, 간식과 장난감이 동원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책을 좋아하도록 할까 이리저리 애쓰고, 매일 책을 나르느라 짐꾼 노릇을 하다 보면 사실, Take out 규칙은 엄마에게 주는 상이었다!
아이의 독서에 관해서 나는 늘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아이에게 책을 읽힌답시고 간식과 장난감을 너무 자주 사주어서 아이가 보상이 없으면 책을 읽지 않는 결과가 나오면 어떡하나 고민, 지식책만 읽으면 지식책만 읽는 편독이 고민, 독서 분량이 적다 싶으면 적어서 고민, 내용이 밝으면 유치해서 고민, 내용이 심각하면 아이에게 이런 주제를 너무 일찍 오픈하는 것이 아닌가 고민, 아이가 신나게 잘 읽는 날엔 저렇게 목을 쭉 빼고 읽다가 거북목 될까 봐 고민!
지금 생각해보면 책에 관한 대부분의 고민은 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대부분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하지만 그 고민의 시간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궁리하고 안달복달하느라 아이의 생각과 취향을 살피고, 이리저리 맞춰보았던 시간들 덕분에 아이들과 더 좋은 관계가 되었으니까 말이다. 독서교육 강의를 할 때 예전의 나와 비슷한 고민을 토로하는 양육자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스트레스 받는 것과 고민을 하는 건 달라요. 스트레스는 받지 마시고, 고민은 많이 많이 하세요.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우리 아이와 더 사이가 좋아지니까요. 다만 고민을 집에서 하지 마시고, 도서관에서 하세요.”
쌓아놓은 책탑 속의 마음을 빼앗는 책
도서관에서 고민을 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도서관의 가장 큰 장점은 속된 말로 ‘본전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공짜니까! 아이가 중간에 “재미없어” 책장을 덮어버려도 “비싼 돈 들여 사줬는데 왜 안 읽어?” 하지 않는다. 읽을 책이 많으니 “넌 책 한 권을 끝까지 읽는 법이 없구나. 끈기가 없어서 어떡할래?” 하지도 않는다. 내일 반납하고 다른 책 빌리면 되니까!
편독이 걱정일 때도 그렇다. 책탑을 쌓아놓고 읽다 보면 아이가 좋아하지 않는 종류의 책이라도 한 권쯤은 마음을 빼앗는 책이 나오게 마련이다. 어느 순간 오히려 편독을 본격적으로 하는 것도 괜찮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이는 한번 마음을 빼앗긴 주제에 대해서는 자기의 수준을 넘어서는 전문책에도 용기를 내 달려든다는 것을 자주 목격하기 때문이다. 만약 양육자가 한 권 한 권 사서 읽는 경우였다면 “넌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어려운 책을 들여다보니? 그냥 네 수준에 맞는 책을 읽으면서 확실하게 이해를 하는 게 더 좋을 텐데!” 이런 안 하느니만 못한 소리를 했을 것이다. 마음 내키는 대로 책을 고르고, 마음 가는 대로 그만 읽을 수 있는 여유를 도서관이라서 가질 수 있었다.
도서관 책의 또 다른 장점은 ‘간절함’을 주는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어쩌다 만난 재미있는 이 책이 내 것이 아니라니! 빌려 읽고 또 빌려 읽고. 이미 외울 만큼 여러 번 읽은 책을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해본 적이 있는가. 그러면서 아이는 깨닫게 된다. 책은 읽어치우는 것이 아니라 늘 곁에 있고 싶은 존재라는 것을. 이미 ‘좋다’는 것을 확실히 아는 책이 드디어 내 것이 되었을 때의 기쁨을!
영어 그림책을 마음껏 고를 수 있는 보물창고
이런 도서관의 장점은 영어 그림책을 빌릴 때 더더욱 빛난다. 우리말 책은 한눈에 쓱 봐도 아이가 좋아할지 아닐지 알아차리기가 쉽다. 추천 책 정보를 얻기도 쉽다. 하지만 영어 그림책은 추천 책이 내 아이에게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비슷한 나이 비슷한 취향이라도 영어 실력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이럴 땐 한 줄이라도 직접 읽어보는 수밖에 없다. 많이 읽으면서 많이 “이 책은 재미없어. 딴 거 읽을래”, “이 책 좋아. 비슷한 책 없을까?” 해봐야 자기 취향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려면 책이 충분히 있어야 한다. 집에서 어떻게 그 요구를 다 채우겠는가. 도서관에서 ‘본전 생각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이 책 저 책 뒤져보는 것이 최고다. 우리 동네 도서관에는 그림책이 없다고 투덜거리는 사람도 인정할 것이다. 우리 집보다는 많다!
그냥 골고루 읽으면 되지, 구태여 아이의 독서 취향을 발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독서의 장점이야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그래야 영어 실력이 늘기 때문이다.
영어 그림책을 읽을 땐 아이와 어른은 서로 조금 다른 꿈을 꾼다. 어른 입장에서는 영어 그림책을 읽으면서 아이의 영어 실력이 자라기를 바라지만, 아이는 그저 즐거움을 위해서 읽는 것뿐이다. 《크라센의 읽기 혁명》에서 세계적인 언어학자 스티븐 크라센 박사는 언어, 특히 외국어를 배우기 위해 독서는 단순히 최고의 방법이 아니라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다. 그러나 무조건 독서가 해결책은 아니다. 그냥 독서가 아니라 ‘자발적 독서’라야 한다. 하나 더 기억해야 할 것은 ‘아이들은 즐거움 없이 어떤 것도 배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미있어서, 진심으로 내용이 궁금해야 외국어의 낯섦과 모호함을 견디며 한 문장 한 문장 읽어나간다. 기꺼이 머리를 굴려가며 읽는 그 순간들 동안 추론력이 자라고, 문해력이 높아진다. 아이가 이왕이면 재미있게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 영어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읽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영어책 독서를 위한 최고의 장소는 도서관이다. 마음껏 취향 탐험을 할수 있는 곳. 마음껏 내 수준에 맞는 책을 고를 수 있는 보물창고!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책 리스트엔 아이의 취향이
아이의 그림책 취향을 발견하는 꿀팁 몇 개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첫째, 아이가 좋아한 책은 반납하기 전에 꼭 제목을 기록한다. 흔히 양육자들은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책의 리스트에 더 관심이 많지만, 아이가 읽고 재미있다고 말한 책의 리스트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반드시 필요하다. 이왕이면 책 제목을 적어두는 것은 물론, 표지 사진도 찍어두는 것이 좋다. 아이가 좋아한 책의 리스트를 모으다 보면 어느새 아이의 취향이 보인다. 어떤 주제를 좋아하는지, 어떤 스타일의 그림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면 다음 책을 고르기가 훨씬 쉽다.
둘째, 도서관에서 아이가 좋아했던 책이 꽂혀 있는 바로 옆자리 책을 눈여겨보자. 같은 작가이거나 같은 주제의 책이기 때문에 아이가 그 책도 좋아할 가능성이 커진다.
셋째, 낡은 책을 눈여겨보자. 흔히 새 책을 대출하고 싶어하지만, 아이들이 많이 읽어 낡은 책, 페이지가 살짝 부풀어 있는 책은 대부분 재미가 보장된 책이다!
넷째, 희망 도서 신청 제도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자. 도서관에 구입 희망 도서를 신청하면 매월 정해진 권수만큼 도서관에서 구입, 대출해주는 서비스다. 특히 영어 그림책들은 희망 도서 구입 성공률이 매우 높은 편이다.
다섯째, 이웃 도서관의 책을 우리 동네에서 볼 수 있는 ‘상호대차 시스템’(동네마다 제도 이름이 다르다)을 이용하면 더 많은 영어 그림책을 볼 수 있다. 특히 책 두께가 얇은 페이퍼백 영어 그림책들도 사서 선생님들은 척척 찾아서 빠르게 우리 동네 도서관으로 보내준다.
한동안 가까운 데 도서관이 없는 동네로 이사를 간 적이 있다. Tuesday(화요일), Thursday(목요일), saTurday(토요일)에는 꼭 도서관에 가는 T-day 규칙을 더 이상 지킬 수 없게 되어 시무룩한 엄마에게 아이가 속삭였다. “이제 집에 있는 책을 매일 매일 Today마다 읽을게요. 걱정 마세요.” 그때가 아마 아이를 키우면서 최고의 순간 중 하나였을 것이다.
전은주_제이그림책포럼 대표
제이그림책포럼 대표. 우리나라 최초의 독자 기반 그림책 잡지 《라키비움J》를 만들고 있다. 육아잡지에 그림책 칼럼을 연재하며, 전국에서 그림책 강연을 하고 있다. 인생에 대한 다정하고 강력한 질문을 품고 있는 그림책의 감동과 기쁨을 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꿈꾼다. 더불어 우리 모두 ‘환장할 순간들’을 ‘환상의 추억’으로 바꿀 수 있기를! 지은 책으로 《초간단 생활놀이》 《제주도에서 아이들과 한 달 살기》 《웰컴 투 그림책 육아》 《영어 그림책의 기적》이 있다.
살바도르 달리를 그린 원종국의 ‘믹스언매치’ 연작살바도르 달리의 화실에 밀레의 만종 실물 액자가 걸려 있었다면, 이제 우리 시대의 한국 작가 원종국의 서재에는 디지털 액자가 있고, 거기엔 언제나 달리의 그림들이 흐른다. 특히 대단히 인상적인 원종국의 ‘믹스언매치Mix-and-Match’ 연작 안에 삽입된 살바도로 달리의 디지털 액자 그림들은 소설의 기본적
우에노는 도쿄의 변천사를 직접 보고 느끼고 싶다는 분들께 추천하는 곳이다. 도쿄에 오는 많은 여행자들이 우에노에 오면 우에노공원, 동물원, 아메요코 시장만 살짝 보고 지나간다. 그러나 도쿄가 초행이 아니고 일본문화 기행을 원한다면 일단 우에노공원을 보고 구글지도 앱에서 ‘국제어린이도서관’을 검색해보자. 핀이 표시된 방향으로 10분만 더 우에노 안쪽 깊숙이
2022년 2월로 기억한다. 8년째 진행하는 책 이야기 프로그램(YG와 JYP)에서 한강 작가 특집을 한 적이 있다. 그 전해(2021년)에 나온 《작별하지 않는다》를 다루면서 평소 흠모하던 이 작가 특집을 기획했다. 그 방송에서 어쩌다 이런 얘기를 했던 모양이다. 한국 작가 가운데 노벨상을 받는 첫 영예는 한강의 몫이 될 거라고. 그것도 아주 짧은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