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_작가
에세이를 쓰고 번역을 하며 다양한 매체에 글을 싣고 있다. 《그들을 따라 유럽의 변경을 걸었다》(모요사, 2016), 《낙타의 눈》(소명출판, 2022), 《카라카스 수업의 장면들》(난다, 2024)을 썼고,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의 《행복한 장례식》(마르코폴로, 2022), 시기즈문트 크르지자놉스키의 《문자 살해 클럽》(난다, 2024), 아룬다티 로이의 《박사와 성자》(소명출판, 2025) 등을 번역했다.
1. 두어 해 전 일이다. 마을버스 정류장 옆 전신주에 고양이 주인을 찾는 게시물이 붙어 있었다. 스코티시폴드(Scottish Fold)를 보호하고 있다며 연락처를 남겨놓았다. 노르스름한 빛깔의 귀 접힌 고양이가 찍힌 흐릿한 사진과 함께. 그 고양이가 곧 제 집을 찾아갔다는 소식을 풍문으로 들었다. 그즈음 우리 집 아래 골목의 고양이 밥 놓는 데 못 보던
진주를 좋아한다. 10년이 넘게 쓰다 말다 하는 소설이 있는데, 글이 막힐 때마다 진주를 찾아간다. 그러다가 정이 들었다. 갈 때마다 비가 내린 덕분에 한적함을 마음껏 즐긴 진주성도 좋았고, 거울처럼 잔잔하고 은은하게 달빛을 비추던 진양호도 좋았다. 비 내려도 좋고 날 맑아도 좋으니 진주는 내게 언제라도 좋은 도시다.이번에는 태풍과 함께였다. 역대급이라고
9월이 되자 낮 기온이 떨어지고 눈에 띄게 일몰 시간이 빨라졌다. 지난봄부터 이때를 기다려왔다. 얼른 털실과 대바늘, 그리고 ‘꽈배기바늘’을 챙겨 거실로 나왔다.뜨개는 한 계절을 앞서간다. 그 당연한 사실을 잊고 있다가 지난겨울에는 때를 놓치고 말았다. 하루이틀 미루는 사이 덜컥 봄이 와버린 것이다. 하루에 몇 단씩 뜨는 것이 고작이다 보니 계절을 따라잡
1. 두어 해 전 일이다. 마을버스 정류장 옆 전신주에 고양이 주인을 찾는 게시물이 붙어 있었다. 스코티시폴드(Scottish Fold)를 보호하고 있다며 연락처를 남겨놓았다. 노르스름한 빛깔의 귀 접힌 고양이가 찍힌 흐릿한 사진과 함께. 그 고양이가 곧 제 집을 찾아갔다는 소식을 풍문으로 들었다. 그즈음 우리 집 아래 골목의 고양이 밥 놓는 데 못 보던
진주를 좋아한다. 10년이 넘게 쓰다 말다 하는 소설이 있는데, 글이 막힐 때마다 진주를 찾아간다. 그러다가 정이 들었다. 갈 때마다 비가 내린 덕분에 한적함을 마음껏 즐긴 진주성도 좋았고, 거울처럼 잔잔하고 은은하게 달빛을 비추던 진양호도 좋았다. 비 내려도 좋고 날 맑아도 좋으니 진주는 내게 언제라도 좋은 도시다.이번에는 태풍과 함께였다. 역대급이라고
9월이 되자 낮 기온이 떨어지고 눈에 띄게 일몰 시간이 빨라졌다. 지난봄부터 이때를 기다려왔다. 얼른 털실과 대바늘, 그리고 ‘꽈배기바늘’을 챙겨 거실로 나왔다.뜨개는 한 계절을 앞서간다. 그 당연한 사실을 잊고 있다가 지난겨울에는 때를 놓치고 말았다. 하루이틀 미루는 사이 덜컥 봄이 와버린 것이다. 하루에 몇 단씩 뜨는 것이 고작이다 보니 계절을 따라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