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자 중독자다. 늘 읽고 쓴다는 얘기면 좋겠지만 실은 딴짓을 더 많이 하는 것도 같다. 책 읽어야지 하고는 영화를 보고, 번역해야지 하다가는 음악을 듣는다. 미술 칼럼 써야지 했는데 갑자기 미술관 북 숍에 가서 육중한 그림책을 사버리기도 하고, 문학 칼럼에 실을 자료 사진을 찍으러 부러 멀리 떠났다가 스치는 사람들 목소리나 바람에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같은 걸 잔뜩 녹음‘만’ 해서 돌아오기도 한다. 문자 밖에서 딴짓의 영역을 계속 넓혀가고 있음에도 문자 중독 꼬리표를 떼버릴 수 없는 이유는, 이 모든 활동에 대해서조차 내가 쓰든 남이 써놓은 걸 읽든 나를 통과하는 모든 건 여전히 문자로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저 온갖 딴짓의 시간도 실은 제대로 ‘문자 하기’에 돌입하려는 예열, 준비운동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결국 되돌이표처럼 읽고 쓰는 자리로 돌아와야만 의미가 완성된다고 믿고 만다. 그러니 그림도 음악도 영화도 글이고, 풍경도 사람도 글이다. 그러나 세상 모든 것에는 자체로 독이 있다. 예컨대 그렇게 소화에 좋다는 양배추조차도 저녁 땐 먹지 말라고들 한다. 가스를 생성해 배가 부글부글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모성에도 맹목성이라는 독성이 있어서 자칫 자식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 오히려 도통 보지 못하는 신세가 되기도 한다. ‘문자 하기’도 마찬가지다. 무한히 떠도는 상상과 개념에 글자를 입혀 땅으로 끌어내리게 되니 대상은 명확해지는(것 같지만) 동시에 납작해지고 어느 순간 왜곡되기도 한다. 그런 위험성을 떠안긴 해도, ‘나 아닌 다른 것’이 되어 모험할 가능성도 얻는다. 문자라는 물성을 입고 거기 담긴 정신을 집요하게 좇는다. 관점이 생긴다.
그렇게, 낯설지만 익숙하게 되는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나는 번역을 한다. 먼 것을 가까이 끌어다 주니까. 또 익숙하지만 낯설게 되는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책을 읽는다. 멀리멀리 데려다주니까. 결국, 책 한 권이 한 세계인 셈이다. 세계이되, 어떤 세계인가 하면, 두려움을 떨치고 폭로된 세계다. 그래서 한 권의 책을 온전히 읽어낸다는 건 다른 이들이 살아낸 시간을 소중히 하며 산다는 태도와 같은 말이다.
독서와 여행은 서로 보완하는 면이 있다. 앉은 자리에서 문자로 하는 여행이 독서이고 움직여 몸으로 세상을 읽는 것이 여행 같다. 번역가 정영목 선생님이 펴낸 《소설이 국경을 건너는 방법》이라는 책도 있거니와(일종의 역자 후기와 번역 관련 칼럼 모음집이라 할 수 있을까), 내가 다른 글쓰기와 병행하며 문학 번역 작업을 하며 살아가게 된 것도 다 저 다른 언어 ‘문자 하기’를 통해 ‘나’가 ‘나 밖으로’ 탈출할 수 있겠다는 믿음 때문 아닐까 싶다. 이해의 연결고리가 ‘문자 하기’를 통해 무한히 증식된다.
돌이켜보면 생의 중요한 결정을 이끈 것은, 어떤 분야에서 무엇이 되겠다거나 하는 대단한 동기가 아니라 시나브로 얻게 된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태도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많은 부분 읽기가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체호프나 도스토옙스키 때문에 (더 공부하겠다고) 러시아로 가게 된 것이 맞다. 아닐 수도 있고. 존 버거나 W. G. 제발트, 페르난두 페소아로 인해 예술 기행을 결심하고 에세이를 쓰게 된 것이 맞다. 아닐 수도 있지만. 이탈로 칼비노, 줌파 라히리나 아고타 크리스토프 덕분에 ‘인비트윈(in between)’ 정체성을 긍정하게 된 면이 있다. 물론 그게 다가 아닐 수 있다.
지금은 남미에서 지낸다. 남미에서 지낸다는 건 인사할 때 서로 양 볼을 비빈다거나 끼니마다 콩이나 옥수수가 접시에 올라오지 않기가 어렵다는 걸 의미할 수도 있지만, 올라! 하고 인사하고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아는 것에 다름 아닌 것 아니겠는가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로베르토 볼라뇨, 옥타비오 파스, 알레호 카르펜티에르, 훌리오 꼬르따사르를 읽으며 결코 남미라는 한 묶음으로 지역과 문화와 사람을 이해할 수 없음도 알았다. 콜롬비아뿐 아니라 거기 칠레, 멕시코, 쿠바, 아르헨티나가 있었다. (물론, “한 나라를 대표해야 하는 의무처럼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은 없다”라던, 앙드레 브르통의 친구이자 초현실주의 태동의 주요 영감 중 하나였던 자크 바셰의 말도 옳다.)
이사벨 아옌데의 경우는 특별히 더 직접적인 위로가 되었다.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한 아파트에 세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자고 일어나면 방문 뒤에 좁고 길쭉한 비늘같이 생긴 투명한 물체가 잔뜩 쌓였다. 머지않아 가구 아래로 갈색 알갱이가 한 움큼씩 쌓여 있는 것도 발견했다. 나무로 만든 건 닥치는 대로 갉아먹는다는 벌레 폴리야라는 놈이 범인이었다. 북미의 터마이트나 남미의 폴리야나 먹성이 좋고 끈기가 보통이 아닌 놈들이다. 잡아먹힌 문짝이나 가구만 부분 소독도 해보고, 회복이 어려워 보이는 가구 몇 점은 내다 버리기도 하고 집안을 24시간 밀폐해 전체 소독도 하느라 두어 달 심신이 지쳐갈 그때, 나는 《영혼의 집》을 읽기 시작했다.
이사벨 아옌데는 조국 칠레에 피노체트 쿠데타가 벌어지자 베네수엘라로 망명해 카라카스에서 《영혼의 집》을 썼다. 자신의 가족사를 칠레의 근대사와 결합해 억압과 저주, 연대와 화해의 가능성을 그려냈다. 거기서 페드로 가르시아란 노인이 개미의 습격을 물리치는 방식이란 여기는 너희들이 있을 곳이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영혼의 집’ 주인인 클라라는 “자신들이 뗏목에 몸을 싣고 슬픔의 바다 위를 정처 없이 표류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들에게 그 참상을 알려야 한다”라고 손녀 알바에게 말한다. 그 알바(즉, 아옌데 자신)는 글을 쓴다.
이후로 나는 내가 사는 집을 ‘벌레의 집’이라고 부르며 친구와 깔깔대고 웃었다. 그 벌레의 집에서 정글을 생활공간 한구석에 두고 살아간다고 정말 느끼게 되었다. 카라카스라는 운명을 외면할 수 없다는 듯이 이후로는 좀 의연해진 것도 같았다. 기록하고 싶었고 감당하는 마음이 되었다. 그것은 마치 보르헤스가 몰두한, 끝나지 않는 아르헨티나 환상곡에 나오는 마누엘 페이로우의 이야기 같았다. 그는 어떤 사건이 시간을 기존 방식과 전혀 다르게 지각하도록 만든다고, 그 사건이라는 유리창에 부딪히면 우리는 그 유리창을 사이에 둔 두 세계의 인식 차로 현기증을 겪게 된다고 말한다. 그 충격으로 우리는 변모한다. 비로소 다른 세상으로 나아간다.
서정_작가
에세이를 쓰고 번역을 하며 다양한 매체에 글을 싣고 있다. 《그들을 따라 유럽의 변경을 걸었다》(모요사, 2016), 《낙타의 눈》(소명출판, 2022), 《카라카스 수업의 장면들》(난다, 2024)을 썼고, 류드밀라 울리츠카야의 《행복한 장례식》(마르코폴로, 2022), 시기즈문트 크르지자놉스키의 《문자 살해 클럽》(난다, 2024), 아룬다티 로이의 《박사와 성자》(소명출판, 2025) 등을 번역했다.
파도를 바라보는 일이 내게 위안이 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건 지중해의 항구도시에서 머물던 어느 해 가을의 일이었다. ‘코스타 델 솔(태양의 해안)’이란 별명을 가진 피카소의 고향답게 늘 햇살이 작열하는 곳이었다. 컬러가 선명한 곳은 더없이 뜨거웠지만 그늘에 들어가면 그만큼 서늘했다.스페인어는 ‘그라시아스(감사합니다)’밖에 모르면서 그 도시에서 석 달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호주 출신의 조각가 론 뮤익의 전시가 2025년 4월 11일부터 7월 13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따르면 주말에 하루 평균 6천 700여 명, 주중에는 4천 600여 명이 전시장을 찾았다. 서울관 개관 이래 단일 전시로는 최대 관람객 기록을 세운 것이다. 어떤 점이 론 뮤익의 전시로 사람들의 발길을 이
미안해!바로 얼마 전에 저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서점이 문을 닫았습니다. 매장은 80여 평. 잡지, 만화, 소설, 생활실용서, 문고판 등이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아동서, 인문서, 예술서 선반도 있고, 나머지 공간에는 문구류나 토트백 등을 두고 있었습니다. 도쿄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진 주택가로, 지하철역 입구 근처에 자리해 지역의 다양한 고객층에 대응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