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옆]은 각 지역의 여러 도서관을 도서관 안에서가 아니라 도서관 옆으로부터 시작해 여행하듯 도서관을 탐방하는 코너이다.
도서관도 식후경, 창원 가로수길 ‘썬댄스’
배롱나무인가. 대형 토분 속 관목이 붉게 꽃을 피운 마당에서 손님들이 사진을 찍는다. 지나던 사람들도 불쑥 들어와 마스크를 벗었다 썼다 하며 사진을 찍고 간다. 메타세쿼이아가 도열한 창원 가로수길, 브런치 카페 ‘썬댄스’의 한낮 풍경이다. 전화로 이곳을 추천해준 K는 현재 자발적 격리 중이다. 코로나19 자가 검사를 시행한 결과, K는 음성이고 K의 부모님은 양성이었다.
아직 읽지 않은 책처럼 세상엔 가보지 않은 도시가 수두룩하다. 창원도 그중 하나였다. 나는 창원에서 100킬로미터쯤 떨어진 도시의 창작촌에서 입주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거기서 꽤 친하게 지내는 작가 K의 본가가 창원에 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며칠 전, K는 본가에 먼저 내려와 핫한 코스를 짜놓고 나를 기다렸다. 나는 낯선 도시를 방문하면 제일 먼저 시장에 가서 그 지역 대표 음식을 맛본 후, 도서관으로 간다. 도서관도 식후경이랄까. 도서관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냉엄하게 성장 기회를 주는 곳이다.
20여 년 전, 나는 온천으로 유명한 프랑스 중부 도시로 어학연수를 갔다. 그 시절 내가 받은 가장 강력한 문화 충격은 도서관이었다. 프랑스의 도서관은, 교통이 그닥 좋지 않은 산 중턱이나 고갯마루에 있지 않고 동네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 태연하고 친근한 모습에 충격받은 나는 점심때든 방과후든 수시로 그곳을 들락거리며 지적 영감에 충만해지곤 했다. 많은 프랑스 사람들처럼 나에게 도서관은 ‘제3의 장소’이자 빵집 같은 존재였다.
시장 대신 한 집 건너 한 집이 맛집인 가로수길에서 식사를 마쳤다. 수제 소스로 만든 버터크림 라떼를 마시며 오후 일정을 잡아본다. 구글맵을 켜서 주변을 살펴보니 차로 20분 거리에 창원 편백 치유의 숲이 있다. 그 근처에 짚트랙이 있고, 창원에서 가장 오래된 도서관, 진해도서관이 있다. 더 가까이 1분 남짓 거리에 창원중앙도서관이 있었다. 도서관 옆에 호수공원이 있다니 금상첨화였다.
창원중앙도서관 생활문화센터 다락 ⓒ임태원
도서관에서 미디어 콘텐츠를 창작한다!
‘창원시 도서관사업소’라고 적힌 현판이 입구에 걸려 있다. 현판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몰라 인터넷으로 검색해보았다. 창원시 도서관사업소는 이미 10년도 전에 출범해 관내 13개의 공공도서관을 기반으로 문화공간의 역할을 다하는 중이었다. 도서관사업소의 산하 기관 중 하나가 창원중앙도서관이었다. 또한 전국도서관대회와 창원 북-페스타를 준비하고, 해마다 ‘창원의 책’을 선정하는 조직도 있었다.
오는 10월, 제59회 전국도서관대회·전시회가 창원에서 개최된다. 나는 북-페스타 현수막을 내건 도서관 전경을 촬영한 후 실내로 들어갔다. 1층 로비에 들어서자 오래된 도서관이 풍기는 친근감에 마음이 누그러졌다. 책을 활용한 인테리어가 산뜻했지만, 폭이 넓고 높이가 낮은 계단과 오래된 벽에서 풍기는 정겨움은 어쩔 수 없었다. 한쪽 벽은 창원시 도서관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꾸며져 있었다.
1층 어린이자료실과 3층 생활문화센터 ‘다락’은 리모델링으로 재구성한 공간이었다. 화사한 파스텔 색조와 원목으로 단장한 어린이자료실은 전반적으로 부드럽고 따뜻했다. 잘 분류된 책과 넓고 쾌적한 공간, 저마다의 취향으로 어린이들은 유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3층으로 걸어 올라갔다. 생활문화센터 다락에 들어섰을 때 순간 멈칫했다. 웹툰 공간에 마련된 빈백에 기대 누워 책을 보는 사람들. 거리낌이 없었다. 열람실의 기능은 점차 줄어들고 휴식문화 공간의 기능이 점차 커졌다. 도서관에서 사람들은 웹툰을 보고, 웨이브온 서비스를 즐기고, 최신 방송 장비로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를 창작한다. 또한 메이커스페이스인 ‘다락공방’에서는 스크래칭 코딩과 쏘잉을 배우고, 웹툰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든다.
각자 개인용 IT 제품을 가지고 다니는 요즘, 도서관의 디지털자료실은 축소되어 연속간행물실과 합쳐져 4층으로 이동했다. 이러한 시류 속에서도 창원중앙도서관은 창원시의 중심 도서관으로서 충직한 이용객을 싣고 한 세기를 건너가는 커다란 방주 같았다.
밖으로 나온 나는 주차장 끝에 연결된 계단으로 올라갔다. 도서관 뒤 숲에는 시원한 그늘이 왕성했고, 5분도 걷지 않아 용지호수공원이 눈앞에 나타났다. 산책로로 나서자 한낮의 태양에 정수리가 뜨거웠다. 널찍한 잔디밭에 설치된 조각품들은 평범한 장소를 야외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키고, 물 위에는 숲과 빌딩과 구름의 그림자가 내려와 호수를 더욱 운치 있게 만들었다. 별 기대 없이 왔다가 뜻밖의 선물을 받아가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잔디밭 안쪽 가장자리에 작은 ‘용지호수어울림도서관’이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가보았지만, 점심시간이어서 문을 닫았다.
현재 우리나라엔 7천 300개가 넘는 도서관들이 작은도서관 포털사이트에 등록되어 있다. 효율적인 운영평가 시스템과 다양한 프로그램, 개혁적인 서비스는 이제 기본이 되었다. 나는 어울림도서관 옆 나무 그늘에 앉아 창원시 도서관사업소 홈피를 찾아 들어갔다. 창원을 대표하는 공공도서관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나는 모던한 건물 외형을 가진 공공도서관 성산도서관이 궁금해졌다.
다름을 ‘우리’로 포용하다
드론을 띄워 수직 부감으로 성산도서관을 본다면 마치 물고기를 잡으려 오므리는 두 손처럼 보일 것 같았다. 다만 물고기 대신 숲과 바람과 책이라고 하자. 1층의 열린 공간은 뒷산 숲으로 연결된 산책로였다. 사람과 자연의 소통을 생각한 설계자의 마음은 2010년 제1회 창원시 건축대상제에서 대상을 받으며 한껏 발휘되었다. 유리로 마감한 외벽에 주변 나무와 숲이 되비쳐 건물은 딱딱한 구조를 벗어나 생동감을 얻었다.
학생과 ‘취준생’으로 보이는 이용객이 많았던 창원중앙도서관에 비해 성산도서관 주위엔 산책 나온 사람, 가벼운 운동복 차림의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나는 자율학습관이 있는 본관은 제쳐두고 다문화자료실이 있는 자료관으로 들어갔다. 놀랍게도 두 동으로 나뉜 건물은 1층의 열린 공간 위를 지나는 독특한 구조의 계단을 통해 연결되었다.
성산도서관은 다문화 특화도서관이다. 지하에 다문화자료실을 두어 지역주민과 더불어 거주 외국인 및 다문화가정 어린이를 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나는 유리문을 밀고 다문화자료실로 들어갔다. 자료실 중앙 테이블에 여러 나라의 전통 소품들이 놓여 있었다. 리엔푸 가면과 중국 모자, 놀이기구 등 값비싸진 않지만 소중한 이야기가 담긴 물건들이었다.
나란한 책장엔 외국어로 된 책들이 꽂혀 있었다. 타국에서 모국어로 된 책을 읽는다는 건, 내가 ‘우리’라는 역사에 포함된 존재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 일이다. 일찍이 프랑스 정부는 ‘미디어 라이브러리(Médiathèque)’를 통해 이민자와 노동자가 포함된 사회적 취약계층이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해왔다. 이러한 문화적 혜택은 프랑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일관성 있게 기여했다.
성산홀 샌드 아트 공연 ⓒ임태원
성산도서관을 방문한 날, 샌드 아트 공연이 있었다. 평소 따분하고 먼 나라의 얘기로 여겨졌던 다문화 인식 개선 교육을 관람객의 감성을 자극하는 문화공연으로 전달했다. 다른 피부색과 다른 문화, 다름을 존중하는 마음에 대한 격려였다. 공연 시작 1분 전까지 관객이 밀려왔다. 한국어를 하는 외국인 가족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성산홀 객석에 조명이 꺼지고 모두의 얼굴색이 비슷해졌다.
도서관의 첨단시설을 척척 활용하는 어린이들
지난 3월에 개관한 최윤덕도서관이 시설 면에서 가장 좋을 거라고 성산도서관 관계자가 말했다. 특히 ICT 서비스를 강조해 궁금증이 더해졌다. 그런데, 최윤덕이 누구란 말인가? 그는 조선시대 무신으로서 정승까지 지낸 위인으로 창원 북면 대산리에 그의 묘가 있었다.
안정된 구조로 세워진 도서관은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당당하고 단정한 인상을 주었다. 출입문을 열자, 도서관은 진가를 발휘했다. 맞은편 뒷문까지 탁 트인 로비가 압권이다. 여백, 여유를 둘러싼 내밀함 같은 것. 단박에 설계자의 의도를 알아챌 것 같았다. 최윤덕 장상의 일대기가 적힌 병풍 형태의 광고물이 출입문 오른쪽에 세워져 있는데 과하지 않았다. 로비 벽면을 채운 책장 중앙에 대형 화면이 설치되어 영상 정보를 송출하고 있었다. 이용객이 남긴 데이터를 취합하고 정리해 알려주는 디지털 큐레이션이었다.
최윤덕도서관 어린이 자료실, 증강현실 그림책 ⓒ임태원
최윤덕도서관은 어린이 특화도서관이다. 첨단시설의 활용은 어린이자료실에서 더욱 활발했다. ICT 특화 존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체험하며 아이들은 금방 도서관과 친해진다. IT 기기를 만지는 아이들의 손이 거침없었다. 직접 색칠한 물고기를 스캔한 후 스크린에서 터치하며 반응을 즐기는 인터랙티브 월이 인기가 많았다. 태블릿 앱을 이용한 증강현실 그림책과 플레이보드, 책 읽어주는 나무 등 어린이의 참여를 유도하는 콘텐츠들이 특별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손이 쉽게 닿도록 낮게 꽂힌 서가의 책들과 창가마다 자리를 배치한 관계자의 마음은 방문객을 먼저 생각하는 내공에서 비롯되었다. 유리벽 원형의 대나무 중정에서 자연 채광이 환하게 비쳐들고, 방문객은 잠시 숲속에서 책을 읽는 것 같아 행복해졌다.
웹툰 코너로 가는 길에 디지털 사서 시스템과 마주쳤다. 대출 이력을 바탕으로 이용객의 취향을 파악해 도서를 추천했다. 도서관 곳곳에 첨단기기가 마련되어 편의를 제공하고 있었고, 코너마다 너무도 편안한 자세로 책을 보는 이용객이 한둘이 아니었다. 지붕과 테라스 기능을 동시에 충족한 하늘정원의 빈백에 앉아 ‘광합성’을 하며 머리를 식히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이제 도서관은 공유하는 거실이었다.
도시를 풍요롭게,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도서관 투어를 마치고 문신미술관으로 갔다. 문신은 1961년 도불한 후 프랑스에서 조각가로 명성을 얻었다. 1980년에 영구 귀국해 고향인 마산합포구 추산동 언덕에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 공사를 시작해, 1994년에 마침내 개관했다. 그리고 이듬해 타계했고, 이후 미술관은 시에 기증되었다. 현재 ‘조각의 모든 방법’ 전(2022. 8. 9. ~ 10. 3.)이 열리고 있다. 도슨트에 의하면, 조각가 문신을 기리고 기억하는 이탈리아 카라라대학 출신 한국 조각가들의 작품을 모아 소개하는 전시였다.
출입문 오른편에 원형미술관이 있었다. 전 세계에 단 하나뿐인 석고 원형미술관. 제1 원형전시실에선 미술관 개관 역사에 관한 드로잉과 기록물을 전시한다. 제2 원형전시실에선 문신의 원형 석고상들을 상설 전시한다. 보통은 지점토로 원형을 만들어 사용한 후 폐기하는데 문신은 지점토의 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석고로 성형했다. 그 덕분에 그의 대담하고 특별한 입체적 감각은 독립적으로 보존되었다. 이 모두는 ‘과정’의 기록이었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과 비탈진 황무지에 번듯한 미술관이 들어서기까지의 고된 과정은 결과를 중시하는 현대인의 악습을 반성하게 했다.
마산만이 내려다보이는 야외 마당엔 미래에서 온 비행물체 같은 조각품들이 착지해 있다. 스테인리스 스틸과 브론즈 재질의 조각들은 시시각각 햇빛을 끌어당기며 마산 앞바다를 숨기고 있다.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객이 작품에 되비쳐 ‘현재’가 작품에 투사되는 새로운 차원을 만들어낸다. 문신의 독자적 조형 언어는 시머트리(symmetry), 즉 대칭성이었다. 다만 엄격한 기계적 대칭성을 벗어나, 자연스러움이 그러하듯, 그는 조금 불균형적이고 아주 미세하게 대칭성을 벗어나 자생적 에너지를 발산하는 조각들을 창조했다.
‘노예처럼 일하고 신처럼 창조하라.’ 치열한 모험과 도전으로 점철된 삶이었다. ‘N차 관람’의 성지인 미술관 하나가 도시를 얼마나 풍요롭게 만드는지. 작가가 일일이 석재를 잘라 만들었다는 야외 마당은 이미 하나의 작품이고, 나아가 미술관 전체가 하나의 작품이었다. 나는 바닥의 모자이크를 향해 카메라 앵글을 맞추었다. 그때, K에게서 전화가 왔다.
도서관 투어 끝, 펼쳐둔 책처럼 다가온 바다
두 번째 자가 검사에서도 음성 반응이 나온 K는 확진된 가족들의 편의를 위해 집을 나와야 했다. 우리는 창동예술촌 골목을 돌아다녔다. 문신 상설 홍보관과 민화 전시를 본 후 아트센터를 찾아가 미디어 아트 특별전 ‘인 메타 월드’를 보았다.
장수산 장수암 ⓒ임태원
우리는 남쪽 끝자락으로 차를 몰았다. K의 스트레스가 바람을 타고 훌훌 날아갔다. 5번 국도를 달리다 난포 교차로에서 우회하면, 마산 로봇랜드와 콰이강의 다리가 나오고, 죽 직진하면 장수산의 장수암이 나온다. 30분을 달리니 탁 트인 바다가 눈앞에 나타났다. 스티로폼 부표가 줄 맞춰 떠 있는 진해만의 홍합 양식장은 푸르고 평화로웠다. 태고종 소속 사찰인 장수암은 경사진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었다. 108계단을 다 오르지 않아도 한눈에 바다가 들어왔다. K가 양팔을 높이 뻗고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우리는 계단 끝 아미타 전각 앞에 앉아 수평선에 눈을 맞추며 마음의 균형을 잡았다. 우리의 삶에는 반드시 바다가 필요하다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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