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결정되던 2024년 10월 10일 저녁 나는 남도 여수에 있었다. 해묵은 어깨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그쪽 병원에 잠시 입원한 상태였다. 기대도 하고 기도도 했지만, 그럼에도 생각보다 너무 빨리 선물을 받게 될 때 엉거주춤함 같은 느낌을 잠시 거쳐, 한강의 첫 소설집이 《여수의 사랑》(문학과지성사, 1995)이었다는 생각을 떠올리며 공교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퇴원하여 돌아오던 12일 낮에 우연히 여수엑스포역 앞 여수세계박람회장에서 열린 ‘잠들지 않는 남도의 세월―여순 10·19와 제주 4·3 미술 교류전’을 관람하게 되었다. ‘탐미협과 여수민미협의 세 번째 만남’으로, 여수와 순천 그리고 제주에서 무자(戊子)년(1948년) 그 해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증거하는 고통스러운 붓질이 어지간했다.
김영하의 <바다 위 희망의 빛>(2024, Acrylic on Canvas, 162.2×97cm)이나 박정근의 <바다, 엇갈림02>(2023, Pigment print, 100×70cm)은 강렬한 핏빛 바다의 파동과 심연을 응시한 그림이어서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고경화의 <존재의 시간, 어디에도 있는 어디에도 없는―종남마을>(2022, Acrylic on Canvas, 162.2×130.3cm)은 무너진 돌담과 뒤편의 대나무 숲을 그린 작품인데, 그냥 보면 오래된 전원 풍경 같아 보이기도 했지만 실은 1948년 11월 계엄령으로 인해 초토화되어 복구되지 못하고 잃어버린 마을이 된 종남마을 풍경이라는 것이었다. 무너진 돌담만이 과거의 어떤 흔적처럼 남아 있는데 그곳에 살던 이들은 그 누구도 돌아오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사연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그림들을 보며 나는 전시회 관계자들에게 이번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도 제주 이야기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본문보다 제목이 더 긴 시 한 편을 떠올리기도 했다. ‘이천오년 오월 삽십일, 제주의 봄바다는 햇빛이 반. 물고기 비늘 같은 바람은 소금기를 힘차게 내 몸에 끼얹으며, 이제부터 네 삶은 덤이라고’라는 긴 제목의 시였는데, 직접 확인해볼 기회는 없었지만 작가 한강 역시 화가 김영하가 그렸던 핏빛 바다의 고통을 애도하기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게 아닐까, 그래서 “아직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사, p. 38)라고 한 게 아닐까, 여수와 순천, 광주와 제주의 트라우마를 함께 앓기 위해 늘 “텅 빈 항아리가 되”는 자기 몸을 응시하고 그 안에서 울리는 “검은 물소리” “깊은 물소리”(<눈물이 찾아올 때 내 몸은 텅 빈 항아리가 되지>,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p. 36)에 귀 기울인 게 아닐까, 그러면서 샤먼 시인이자 영매 작가로 고통스러운 글쓰기를 수행한 게 아닐까…… 그런 상념들을 이어갔다.
매우 개성적인 숨결로 이채로운 말결을 파동처럼 빚어, 그윽하고 깊은 감동을 독자들에게 선사하는 영매 작가 한강이 다룬 인물들은 대체로 세상의 온갖 허물을 모아 앓는 자, 상처 깊은 자의 형상을 하고 있다. 상처의 심연으로 내려가, 왜 인간은 이토록 탈나지 않으면 안 되었던가, 왜 세상은 그토록 고통스럽지 않으면 안 되었던가, 질문한다. 그 탐문은 대체로 떠도는 길 위에서 이루어지고, 여로의 현존은 깊은 여수(旅愁)의 심연에 갇힌 여수(女囚) 형상을 한 경우가 많다.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1995) 시절부터 그러했다.
일찍이 대학 4학년 때 쓴 시 <편지>(1992)에서 “잃을 사랑조차 없었던 날들을 지나 여기까지, 눈물도 눈물겨움도 없는 날들 파도와 함께 쓸려가지 못한 목숨, 목숨들 뻘밭에 뒹굴고”라고 토로했던 한강은 《여수의 사랑》에서 희망이 소진된 상황을 견디는 고통의 흔적을 시리도록 아프게 점묘한다. 대부분 20대의 주인공들인데도 불구하고, 한강의 소설적 프리즘 안에서 그들은 이미 청춘이 아니다. 발랄하고 경쾌한 젊음의 풍속이나 세태와는 아랑곳없다. 그들은 고아처럼 버려졌거나, 실제로 버려지지 않았더라도 버려졌다고 여긴다. 그래서 정처 없이 떠돌며 ‘겨우’ 존재하는 삶을 살기 위해 안간힘을 다한다. 신체적 통증과 정신적 질환에 시달리고, 또 때때로 제대로 살기도 전에 죽어간다. 또한 고독하고 우울하며 피로에 지쳐 있다.
그들에게 세계는 매우 혹독하다. 가령 <여수의 사랑>에서 바람은 “내 어깨를 혹독하게 후려”치고 “무겁게 가라앉은 잿빛 하늘은 눈부신 얼음 조각 같은 빗발들을 내 악문 입술을 향해 내리꽂았다”(《여수의 사랑》, 문학과지성사, 1995, p. 58)라는 부분만 보더라도 그렇지 않은가. 그 같은 “잿빛 하늘” 아래 드리워진 길고 짙은 어둠의 그림자 속에서 그들은 “얼음 조각”에 피격당한 듯한 현존을 부정하고 신생을 낭만적으로 동경하고 열망한다. 영혼의 숨결을 잃어버린 세대의 고통스러운 초상이다
상처받은디아스포라들과 함께 울기
《여수의 사랑》 이후 펴낸 소설집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영원》, 그리고 장편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흰》 《작별하지 않는다》,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에 이르는 한강 문학의 공통 주제는 상처받은 이를 위로하고 고통스럽게 스러져간 이를 애도하는 상상력과 관련된다.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가 특정 역사와 관련한 트라우마로 강렬하게 다가와서 그렇지, 사실 한강의 문학은 역사적이기보다 인간적이고, 더 깊게는 신화적이다. 그러니 그녀의 문학을 두고 역사적 진실과 관련한 특정 입장에서 판단하려 든다면 제대로 된 접근법에서 멀어진 것일 수 있다. 역사적 사실을 넘고 초극하여 고통의 심연에서 지극한 인간적 진실을 고통스럽게 탐구한 작가가 바로 한강이기 때문이다.
한강은 세상의 모든 슬픔을 함께 울어줄 매우 큰 “텅 빈 항아리”를 작은 몸 안에 지닌 작가다. 특히 가부장 중심 사회에서 고통받고 이해되지 못했던 여성의 고통과 존재론적 변신을 위해 오래 고뇌했다. 세상에서 고통받는 여성들, 신체적 정신적으로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 자기 삶의 자리에서 뿌리 뽑힌 채 상처받은디아스포라들과 함께 울며, 그 항아리를 곡진한 눈물로 채운다. 함께 울며 ‘괜찮아’라는 말로 달래고 싶어한다. 한강의 언어 중에 ‘괜찮아’라는 말은 은근한 마력의 매력을 풍긴다.
<괜찮아>라는 시가 있다. 난 지 두 달 된 아이가 저녁마다 울자 시적 자아는 “왜 그래”라는 말을 안타깝게 반복하면서 애태웠다. 그러다 문득 “괜찮아”라는 말로 바꾸어 위로했더니 며칠 뒤부터 아이의 저녁 울음이 그쳤다는 이야기다. “왜 그래”는 따지듯 걱정하는 목소리다. 반면 “괜찮아”는 공감하며 끌어안는 마음의 소리다. 진심으로 위로하며 치유를 기도하는 말이다.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p. 76)을 들여다보며 “괜찮아”라며 달래줄 수 있는 마음, 그것이 바로 속 깊은 작가의 마음이다.
그러나 세상은 사실 괜찮지 않다. 괜찮지 않기에 “괜찮아”라는 말이 괜찮게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내 여자의 열매>나 《채식주의자》에서 여성 인물 옆에는, 그녀에게 “괜찮아”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그런 눈과 목소리가 없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헤아려줄 마음의 눈을 구하기 어렵다. 그래서 힘들다. 여리고 취약할 뿐이다. 먹고 마시기 힘들고 심지어 숨쉬기조차 힘들다. 이렇게숨 쉴 수 없는 존재들, 그 숨 막힌 존재들이 나름대로 숨 쉴 수 있도록 “괜찮아”라는 위로의 말과 생명의 음표를 감각적 리듬에 실어 소통하고자 한 것이 한강 문학의 핵심적 특성이다.
요컨대 나날의 상처나 역사적 트라우마에 몰입하는 감각의 밀도를 통해 문학적 치유의 새로운 스타일을 감각적으로 발견한 작가, 서사의 전개를 초월하여 서정의 몰입으로 심리적 사건을 웅숭깊게 다룬 작가, 그리고 기존의 서정적 소설과도 또 다르게, 《흰》과 같은 작품에서 면밀하게 실천되었듯, 서정과 서사가 잘 어우러지는 새로운 문학 장르의 가능성을 혁신적으로 보여준 작가, 무엇보다 여리고 작은 존재들에게 숨 쉴 수 있는 감각의 음표를 선사한 작가로 기록될 한강 문학을 동시대에 직접 읽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행복한 책읽기가 될 것이다.
우찬제_문학평론가
문학평론가, 대학교수.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카오스모스 수사학》(2023), 《책의 질문》(2023), 《애도의 심연》(2018), 《나무의 수사학》(2018), 《불안의 수사학》(2012), 《프로테우스의 탈주-접속시대의 상상력》(2010), 《고독한 공생》(2003), 《타자의 목소리》(1996), 《상처와 상징》(1994), 《욕망의 시학》(1993) 등을 썼고, 대산문학상, 팔봉비평상, 김환태평론문학상, 소천비평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최근엔 기후 침묵을 넘어 기후 행동을 위한 생태학적 지혜와 상상력을 탐문하는 환경인문학을 모색하면서, 문학과 문화 교류 양상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2024년 10월 10일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강 작가를 선정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다음으로 한국의 두 번째 노벨상이자, 아시아 여성 작가로서는 최초의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 것이다.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비극적인 역사 속에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쓴 《작별하지 않는다》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인간의 폭력
영화관에는 없는 도서관의 자유도영화관과 도서관 사이, 미술관이 있다. 영화관에서 우리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영상과 음향을 감상한다. 엔딩 크레디트가 오르면 자막을 끝까지 보며 감동의 여운을 오래 저작하고 싶지만, 곧 일어나야 한다. 혹 영화를 보기 어려운 상황이 되더라도, 중간에 나오는 건 쉽지 않다. 타인들에게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오래전 쿠바 아바나
살바도르 달리를 그린 원종국의 ‘믹스언매치’ 연작살바도르 달리의 화실에 밀레의 만종 실물 액자가 걸려 있었다면, 이제 우리 시대의 한국 작가 원종국의 서재에는 디지털 액자가 있고, 거기엔 언제나 달리의 그림들이 흐른다. 특히 대단히 인상적인 원종국의 ‘믹스언매치Mix-and-Match’ 연작 안에 삽입된 살바도로 달리의 디지털 액자 그림들은 소설의 기본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