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옆]은 각 지역의 여러 도서관을 도서관 안에서가 아니라 도서관 옆으로부터 시작해 여행하듯 도서관을 탐방하는 코너이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기는 곳
‘도서관 생활자’. 이만큼 나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또 있을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을 섭렵했다거나 하다못해 한 분야의 서가를 통째로 읽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라면 ‘다독가’라거나 어떤 분야의 전문가라고 소개하는 편이 더 좋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내게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읽는 공간이 아니었다. 초등학생 때는 친구들과 읽고 싶은 책 목록을 적고, 그 책들을 빠르게 찾아오는 놀이를 하곤 했다. 짐작했던 위치의 서가 한켠에 꽂혀 있는 책을 제일 먼저 뽑아낼 때의 즐거움은 제법 컸다. 자리로 가져온 책들을 다 읽지 못하더라도 ‘내일은 또 어떤 책들을 보다 더 빠르게 찾아낼까’, 기대감으로 한껏 부풀어 집으로 돌아갔다. 중고생 때는 도서관에서 봉사활동을 했는데, 책에 라벨을 붙여 하나하나 분류하고 창고에 있는 오래된 문헌을 정리할 때면 마치 고고학자가 된 기분에 사로잡혔다.
도서관 생활자라고 말해놓고 어쩐지 도서관에서 보낸 시간이 읽고 쓰는 것과는 영 거리가 먼 일들뿐이었던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지만, 오히려 바로 그점 때문에 내가 도서관에서 오랫동안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비로소 대학생이 되어서야 도서관의 쓸모를 깨닫고는 읽고 쓰며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실상 읽으며 보낸 시간보다는 몰입의 순간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며 보낸 쪽이 더 많았다. 도서관 옆 건물에 위치한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고, 읽고 쓰는 중간에 책을 베개 삼아 졸기도 하다가, 학생들이 다 돌아가고 나면 새벽에 홀로 남아 세미나실에서 넷플릭스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소파에서 까무룩 잠들곤 했다.
동료들이 작업을 하기 위해 카페를 찾을 때 나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별다른 목적이 없어도 도서관에 가면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아니, 오히려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도서관에 가는 쪽에 가까웠다. 대학을 졸업하고 학교도서관을 이용하지 못하게 된 후로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늘 그리움에 젖었다. 도서관 창틀에 걸쳐진 시끌벅적한 중앙광장의 풍경과 은은히 새어 들어오던 원두 향기. 비밀의 방처럼 문을 걸어 잠가놓았던 도서 분류번호 800번대의 서가, 그 안에서 문을 닫고 책을 탐닉하던 중 희미하게 들려오던 노크 소리······.
독서와 집필, 식생활과 휴식, 모든 것이 가능하다
마포중앙도서관 입구에 세워진 비석 ⓒ박하빈
서울에서 살기로 마음먹고 책들을 상자에 담으며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앞으로는 이 책들을 읽고 쓰며 시간을 보내야겠구나. 공공도서관은 어쩐지 대학도서관보다 고리타분하거나 시설이 미흡할 거라고 짐작했던 탓이다. 눈여겨보았던 집 몇 곳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지도 앱을 켰다. 마포구청역이 마지막 행선지였는데, 역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마포중앙도서관이 위치해 있었다. 무더운 날씨에 여기까지 왔는데 들러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방문한 것이었는데 웬걸, 더위도 피하고 식사는 물론 간식까지 전부 해결할 수 있었다. 도서관을 나온 것은 폐관 시간이 다 되었을 때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에 몸을 실으며, 여기로 이사 와야겠다고 차분히 결정을 내렸다. 도서관은 내게 생활의 공간이기도 했으므로.
아침 일찍 백팩에 텀블러와 태블릿을 챙겨 향한 곳은 어김없이 마포중앙도서관이다. 설립 당시 서울시 자치구 중 최고 규모로 지어진 마포중앙도서관은 마치 책을 펼쳐놓은 듯한 기하학적인 외관을 자랑한다. 입구에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라고 적힌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익숙했던 잠언을 거대한 비석으로 보니 느낌이 생경했다. 요즘 유행하는 포켓몬 빵만큼이나 인기를 끌었던 ‘포켓몬 GO’ 게임의 유저이자 동네 주민인 동료의 말에 의하면, 이 비석이 요 근방의 유명한 포켓스톱1)이라고 했다(그래서인지 이따금 도서관 정문에서 휴대폰을 들고 서성이는 사람을 보면 혹시,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도서관 바로 맞은편에는 홍제천이 자리하고 있어서인지(물 포켓몬이 출몰한다) 천에서 올라오는 계단을 지나 도서관으로 건너오는 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포켓스톱, 아니 비석을 지나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큰 편의점과 카페, 그리고 식당가는 쾌적하고 넓어 푸드코트를 방불케 한다. 구내식당은 물론 한식당과 돈가스 전문점, 유명한 체인점인 앤티앤스 프레즐까지 다양한 가게가 입점해 있어 무얼 먹을지 생각하는 게 고민이라면 고민일 법했다. 일층에 위치한 한식당 ‘희우정’에는 책을 읽다 내려온 이용객들보다는 식사를 하러 도서관을 찾은 이들로 붐볐다. 쌈밥, 솥밥 등 한 끼 식사로 든든한 음식을 주로 판매한다. 메인 메뉴는 물론 함께 나오는 반찬들이 정갈하고 혼자 만들어 먹기에는 품이 많이 드는 것들이어서 일인 가구에게는 이만한 식사가 없겠다 싶었다.
식사를 마치고 이층으로 올라가 시각장애인 바리스타가 운영하는 북카페 ‘카페 모아’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노라면 어린 친구들의 신난 목소리가 들려온다. 도서관 내부에 어린 자녀를 둔 부모가 마음 편히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키즈카페가 마련되어 있을 뿐 아니라, 도서관 방문이 어려운 영유아 가정에는 책꾸러미를 보내주기도 한다. 카페와 마주하고 있는 어린이 열람실은 동화책이나 애니메이션에서 볼 법한, 벽면을 오목하게 인테리어 한 발코니형 서재로 꾸며져 아이들의 호기심과 어른들의 동심을 자극한다. 그래서인지 어린이 열람실에는 아이와 함께 따라온 부모 외에도 이용하는 성인 방문객들이 많았다. 평소 읽고 싶었던 악어 그림책을 하나 꺼내 읽다가 잠깐 졸았던 것도 같다.
약자들도 불편함이 없는 친절한 도서관
창가석 이용자들과 창밖 풍경(좌) / 열람실 내부(우) ⓒ박하빈
읽고 쓰는 일이 익숙해질 법도 한데 의자에 오래 앉아 있으면 어쩐지 서너 시간에 한 번 정도는 괜히 자리에서 일어나 안 하던 체조도 하고 싶고, 바람도 좀 쐬고 싶어진다. 그럴 때면 도서관 뒤편에 있는 광장으로 나간다. 한 사람이 거대한 책들이 높이 쌓인 책 더미 한쪽에 올라앉아 독서를 하는 조형물 ‘지혜의 성전’을 둘러싸고 띄엄띄엄 놓인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햇살을 쬐는 이들이 있다. 도서관 이용객은 물론 바로 옆 장애인 복지관에서 휠체어를 타고 나온 이들도 섞여 있다. 지난해 썼던 원고들은 모두 이곳에서 고민하고 읽고 썼다. 문장이 막히거나 도저히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 벤치에 앉아 있으면 열람실 창가에 앉아 공부를 하거나 독서하는 이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어쩐지 내 모습이 눈에 선해, 창가 어딘가에 고민하며 앉아 있을지도 모를 나의 그림자를 찾아 바통 터치를 하기 위해서라도 몸을 일으키게 된다.
집필을 끝내고 필요한 참고문헌이 없을 때도 도서관을 찾는다. 인근에 있는 ‘망리단길’까지 걸어 내려가지 않아도 조용한 곳에서 책을 읽으며 맛있는 식사와 디저트까지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거기에 소소한 취미까지 더해졌다. 서울영상위원회와 마포중앙도서관이 함께하는 독립영화 상영회에서 우리의 일상 속에 숨어 있던 의제를 마주하게끔 만드는 작품들을 무료로 상영하는 덕이다. 퀴어 자녀를 둔 엄마의 이야기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여성의 10개월을 다룬 작품도 있다. 열람실로 올라가며 엘리베이터나 복도에 붙은 포스터에서 이달의 상영작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독서 문화 프로그램이나 강연 목록을 꼼꼼히 살핀다. 그러다 보니 읽어야 할 것들과 써야만 하는 것들이 자꾸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탓인지 내 집처럼 드나들며 생활하기에 편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치 보지 않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이나 큰 글자 서적이 진열된 서가에서 책을 꺼내 읽는 할아버지, 책을 읽다 지쳐 소파에 드러누운 아이들을 보며 그런 기분을 느끼는 것은 비단 나만은 아닌 듯했다. 그러던 중 신간을 검색하려다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인데, 마포중앙도서관은 장애인, 임산부, 노인 등 모두가 이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공간을 설계해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Barrier free design) 인증’을취득했다고 한다.
어린이 열람실을 이용하는 어른들(좌) / ‘지혜의 성전’ 조형물(우)ⓒ박하빈
도서관에 있으면 많은 이들의 생활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어린아이, 아이들의 부모, 휠체어를 탄 장애인, 큰 글자 서적을 읽고 있는 노인, 수험 생활을 하는 이들. 도서관은 많은 이들에게 또 다른 생활의 공간인 것이다. 누구나 편안하게,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공간, 장소, 그리고 세계. 그런 세계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 내 ‘옆’에 있는 많은 이들을 떠올리며 나는 지금 여기에서 생각하고, 어김없이 읽고 또 쓴다.
[도서관 옆]은 각 지역의 여러 도서관을 도서관 안에서가 아니라 도서관 옆으로부터 시작해 여행하듯 탐방하는 코너이다. 한라도서관 진입로, 방선문계곡 숲길 ⓒ강영아 도서관과 자연의 조화《나니아 연대기》에서 수잔이 옷장 문을 열고 신비한 세계로 진입하는 경험을 하듯 이곳, 제주에도 비밀의 문을 가진 도서관이 있다. 한라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바깥 공기
충북 영동군 매곡면 노천리. 야트막한 야산을 뒤로하고 자리 잡은 한가로운 농촌 마을이다. 마을 길로 들어서면 초입에 2층 붉은 흙벽돌집이 눈에 들어온다. 고향집에 들어선 것 같은 포근함이 느껴지는 이곳이 농민문학기념관이다. 바로 옆에 노천상리마을회관이 있어 더욱 정겹다. 작지만 큰 역할을 하는 농민문학기념관은 국내 유일의 농민문학 전문 문학관이다.
2024년 1월, 무려 20년 만에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 새로운 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헬싱키의 38번째 도서관이기도 하다. 그 주인공이 바로 깔라사따마도서관으로, 그냥 새로운 도서관인 것 말고도 재미있는 특징이 몇 가지 더 있다. 우선은, 어린이와 청소년 대상의 도서관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도시 한가운데 있는 대형 쇼핑몰 안에 자리하고 있으며